‘불의 음모단’ 공포

입력 2017-03-22 00:01
유럽연합(EU)의 긴축요구에 항의하는 그리스 시위자들이 지난 1일(현지시간) 아테네에서 유럽연합기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EU구제금융 조사단과 국제통화기금(IMF) 대표들이 묵고 있는 호텔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AP뉴시스

앞으로 유럽 각국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에도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그리스 경찰이 아테네 인근 우편물 분류 센터에서 우편 소포에 담긴 폭탄 8개를 발견해 해체했다. 소포들은 유럽 각국의 유럽연합(EU) 재무담당 부서와 기업체들이 수취인이었고, 발송자로는 그리스 경제 당국과 학술 기구 등이 가짜로 적혀 있었다.

지난 15일 독일 베를린 재무부 청사와 16일 국제통화기금(IMF) 파리사무소에서 연달아 우편물 폭탄 소동이 발생한 데 이어 유사한 방식의 테러 시도가 적발되자 유럽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그리스 당국은 그리스 극좌파 무정부단체 ‘불의 음모단(Conspiracy of Fire Nuclei)’이 배후일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이번에 적발된 우편물 폭탄도 IMF에 배송된 폭발물과 비슷한 구조였다.

불의 음모단은 2008년 고급 자동차 판매점과 은행을 방화해 처음으로 그 존재가 외부에 알려졌다. 이후 그리스 재정 위기로 조성된 대중의 분노를 정당성 삼아 정부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자행해 왔다. 단체 이름대로 증오의 대상에 불을 질러왔던 이들은 2009년부터 폭탄 공격으로 테러 방식을 바꾼 뒤 활동을 강화해 150차례 이상 테러 공격을 벌였다.

불의 음모단은 특히 2010년 그리스가 EU와 IMF가 주축이 된 국제채권단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뒤 고통스러운 긴축을 강요받자 아테네 주재 외국 대사관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당시 이탈리아 총리 등 유럽 지도자들에게 차례로 폭탄 소포를 발송해 악명을 떨쳤다. 당시 그리스 경찰은 6명의 핵심 대원을 체포했다.

미 정부의 테러 단체 지정 이후 2011년 거의 와해된 것으로 알려졌던 불의 음모단은 2013년 6월 그리스의 한 교도소장의 자동차에 폭탄을 터트려 탑승자를 다치게 했고, 2015년 5월에는 50여명의 대원이 집권당 시리자의 당사를 점거한 뒤 수감 대원 석방과 중범죄자 감옥 폐쇄를 요구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