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죽으로 저녁식사… 오후 7시10분 다시 책상 앞으로

입력 2017-03-21 18:15 수정 2017-03-21 21:08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문을 받은 곳은 특수1부가 위치한 서울중앙지검 10층 복도 끝 방, 1001호 영상녹화조사실이었다. 묘하게도 1001은 대통령 차량번호로 쓰이는 등 국가원수와 관련된 숫자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며 여러 차례 회자됐던 숫자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 최순실(61·수감 중)씨가 운영하던 테스타로싸 카페의 전화번호 끝 4자리, 최씨가 머문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 오피스텔 호수가 모두 1001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외투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웅재 형사8부장, 이원석 특수1부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부장검사의 옆자리에 배석한 평검사가 박 대통령의 진술을 받아 적는 타자 소리만 작은 방 안에 조용히 울렸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영상녹화를 부동의해 녹화·녹음자료 없이 속기록만 남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의 답변들은 검사 측 컴퓨터 모니터에 바로 활자화돼 떠올랐고, 또 다른 화면 오른쪽 하단에서는 메신저 쪽지들이 전달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 전산망인 이프로스와 똑같은 ID·비밀번호로 접속되는 검찰 메신저였다. 한 검찰 관계자는 “주요 피의자를 신문하는 경우 조사실 내 검사뿐 아니라 수사팀 관계자들이 질문의 방향, 확인 필요성이 있는 부분 등을 실시간으로 상의·전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라진 대검 중앙수사부의 대면조사 방식이기도 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 당시 검찰 수뇌부는 실시간으로 문답을 모니터링했고, 조사실 내 검사들에게 메신저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배석검사의 속기가 전산망 내에 저장될 때마다 수사결정시스템 접근 권한이 있는 수사팀과 소수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대면조사 진행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유영하·정장현 변호사가 입회했다.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옆에, 정 변호사는 뒤에 앉았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1001호에는 밖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특수유리 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 검찰은 바로 옆 1002호에 응급용 침대와 소파 2개를 들여 간이 휴게실을 꾸몄다. 박 전 대통령은 오후 조사 중 2차례 휴식했다.

1001호 맞은편에는 경호원 대기실 2곳, 변호인 대기실 1곳이 마련됐다. 화장실은 1001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화장실에 갈 때 동행한 검찰 직원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검찰은 배석검사 4인 가운데 여검사도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2시간30분가량 오전 조사를 받은 뒤 오후 12시5분부터 1시간가량 조사실 건너편 대기실에서 도시락으로 변호인들과 함께 점심을 해결했다. 김밥·샌드위치·유부초밥이 조금씩 든 것이었다. 순조롭던 조사는 오후 5시35분쯤 중단됐다. 박 전 대통령은 죽으로 저녁식사를 한 뒤 오후 7시10분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새벽까지 청사 대기를 지시받은 서울중앙지검 직원들은 이날 2층 구내식당에서 식사했다.

이날 검찰은 서울중앙지법과 맞닿은 정문만을 직원과 취재진에게 개방했다. 청사 뒷산 등산로 등 6∼7곳의 좁은 이동경로들이 모두 차단됐다. 이 과정에서 방호인력이 부족해 수사관은 물론 검사들도 근무조에 편성돼야 했다. 집회 인력이 담을 넘어 들어오는 등 돌발 상황을 우려한 것이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별한 예우는 아니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글=이경원 나성원 황인호 기자 neosarim@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