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 박근혜 수사를 정략적으로 이용 말라

입력 2017-03-21 17:33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후 11일 만이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포토라인에 선 박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고 말했다. ‘29자(字)’의 짧고 간결한 입장 표명이다. 대국민 메시지가 없는 요식적 언사였다. 전날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사가 “준비한 메시지가 있다”고 밝혔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혹시나 했던 일말의 기대를 다시 한번 외면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13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뇌물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등이 그것이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다 하되 수사 자체는 피의자로서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우리 사회의 법치를 정립하는 일이기도 하다. 검찰 수사가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엄정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결과를 도출해내야 한다.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일정이나 여론의 향배를 의식하지 말고 신속하게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밝혀야 한다는 뜻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처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구속이든 불구속이든 정치적 판단이나 외부의 입김 없이 집행돼야 한다.

이 문제는 조기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검찰 수사와 향후 사법처리 향방에 따라 48일 앞으로 다가온 5·9대선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각 당 대선 주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속 여부에 따른 주자들의 셈법도 복잡하다. 이를 의식한 듯 이재명 성남시장 측은 박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하라고 했고,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구속하는 것이 당연히 맞지 않나”라는 의견을 냈다. 이와 달리 TK(대구·경북) 표심을 염두에 둔 일부 대선 주자들은 불구속 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대선 주자인 김관용 경북지사, 김진태 의원, 이인제 전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이 사법 절차에 대해 이처럼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구속, 불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법기관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다. 대선 주자는 물론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처럼 검찰의 판단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선거전 유불리를 따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가 자칫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다시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이나 정치적 논란의 시작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계기가 되도록 정치권도 협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을 각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