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주원] 천덕꾸러기 된 기업

입력 2017-03-21 17:44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 기업은 존재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됐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1차적 책임은 물론 기업에 있다. 투명하지 못한 경영시스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로비활동, 시장경쟁원리의 근간을 해치는 불공정 거래 등이 그것이다. 이런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한국 경제사와 정치사에 흘러오면서 아직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래도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나아졌고 앞으로도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될 거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책임은 누구나 알기에 여기까지 하고, 기업이 한국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외부의 다른 원인을 살펴보자. 우선 먹고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국경제는 이제 성장률 2%가 친숙하다. 2015년과 2016년이 모두 2%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와 내년도 2%대로 보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4년 연속 2%대에 갇히게 된다. 저성장으로 소득은 늘지 않고 주위에 실업자는 넘쳐나고 국민 삶의 질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그래서 동네북이 필요하다. 기업이 제일 만만해 보인다. 쪼그마한 꼬투리라도 잡히면 언론, 정치권, 시민단체 등 여기저기서 가만 놔두지 않는다. 기업도 책잡힐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다른 원인으로 한국사회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기업은 항상 강자이고 근로자와 소비자는 항상 약자라는 주장, 기업은 배부르고 국민은 배고프다는 주장, 기업 때문에 소득 불균형이 커졌다는 주장 등이 심심치 않게 표출된다. 여기서 정치권은 한 발 더 나아가 기업의 돈을 뺏어다가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자고 한다. 아마 기업이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투표권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기업 중 배부른 기업은 없다. 오히려 경쟁력 저하로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칼날 앞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결국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업은 한국사회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한때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최전선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던 기업들이 이제는 한국사회에서 어쩌면 사라져야만 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이제는 한국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 스스로 한국을 벗어나 아직 기업에 대해 우호적인 국가로 기반시설과 센터를 이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특히 세계시장을 상대로 하는 기업이라면 더더욱 빨리 이전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한국에 남았을 때 기업도 어려워지고 한국사회도 기업을 원하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기업의 국적을 바꾸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그래야 한국사회의 소득 불균형 문제, 착취 문제, 국민들만 배고픈 문제의 화살이 기업에 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갈 곳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중국으로 본사와 주요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중국정부에 세금을 내고 중국인 CEO와 근로자를 고용하겠다고 한다면 최근 반한 감정을 가지는 중국사회의 분위기는 아마 지금과 비교해 180도로 달라질 것이다. 그 기업을 한국기업이 아니라 중국기업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하면 도널드 트럼프는 아마 자기 트위터에 “Thank you! We would love to have you!(고마워요. 우리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한 달 내내 할 것이다. 기업도 살고 사회도 평안해지는 유일한 방법이 기업의 국적을 바꾸는 것밖에 없을 듯하다 생각이 안타깝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