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15구역.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40여분 떨어진 외곽 지역이다. 인도양과 연결되는 켈레니 강이 흐르고 있다. 강 옆으로는 나무판자로 만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가옥들의 지붕은 양철을 씌웠고 양철 위엔 돌이나 타이어를 얹었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으면 고급 주택과 별장들이 즐비했겠지만 이곳 나무집들은 도시 빈민들이 살아가는 거주지였다. 이곳은 ‘싸미푸르’ 마을로 불렸다.
지난 1일 서울 은평제일교회 심하보(65) 목사와 이곳에서 ‘해피 어린이센터(해피센터)’를 운영하는 권혁(51) 전영선(51·여) 기아대책(기대) 봉사단 부부가 이곳을 방문했다. 해피센터에서 판잣집 동네까지는 ‘툭툭이’로 10여분이 소요됐다. 툭툭이는 스리랑카의 대표적 대중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3륜차다. 덜덜거리는 툭툭이에서 바라본 풍경은 열악했다. 곳곳에서 악취가 풍겼고 사람들은 무표정했다. 간간이 문이 열린 집의 내부도 볼 수 있었는데 젊은 남자들이 누워있었다.
권 기대봉사단은 “이곳은 스리랑카 정부에서도 포기한 지역이다. 술이나 마약에 중독돼 누워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밤이면 우범지대로 변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대봉사단은 해피센터에 결석한 아이들의 집을 방문했다. 전 기대봉사단은 “가정 방문을 수시로 하면 센터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의 어려움을 알 수 있다”며 “아이들의 부모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말했다.
일행이 나무집 사이 골목으로 들어서자 주민들은 경계와 호기심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골목길은 폭이 1m 남짓 했다. 굽이굽이를 돌아 도착한 곳은 닛티야 켈레니(9)양의 집이었다. 강 위에 나무판자로 지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허름한 가옥 아래에는 오물들이 넘쳤다. 닛티야는 집밖 빨랫줄에 걸어놓은 옷 사이로 힘없이 나왔다. 갑자기 열이 올라 센터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심 목사와 전 기대봉사단은 아이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심 목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봤다.
닛티야의 가족은 모두 7명이다. 아빠는 근처 골페이스 해변에서 나뭇잎에 싼 뒤 씹으면 단맛이 나는 기호품을 판다. 그것으로 하루 벌어 끼니를 해결하고, 엄마는 차 공장에서 일을 한다. 닛티야양의 집을 찾았을 때 부모는 모두 일하러 나간 상태였다.
싸미푸르는 콜롬보의 대표적 빈민지역인 맛탁쿨리여 지역에 속해 있다. 거주자 99%가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2005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스리랑카 동부와 남부의 이재민들이 이주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은데 월수입은 8000∼1만5000루피(8만∼15만원) 수준이다. 주민 대부분이 판자촌에 살면서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 중엔 돈을 벌기 위해 중동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려고 떠나거나 차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권 기대봉사단은 말했다. 이곳은 깨끗한 식수가 부족해 위생 수준도 매우 낮은 편이다.
교육과 문화 혜택이 전무한 이곳에서 기아대책이 운영하는 해피센터는 ‘회복 치유소’ 같았다. 아동개발프로그램(CDP)을 통해 일대일 결연을 맺은 아동만 283명에 이르고 방과후학교로 해피센터를 찾는 학생도 450명이 넘는다. 해피센터는 방과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급식도 실시하고 있다. 권 기대봉사단은 “아이들이 자주 아파서 조사를 해봤더니 하루 한 끼만 먹더라”며 “영양이 부족한 아이들을 따로 모아 급식을 했더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이튿날 심 목사 일행은 급식 봉사에 참여했다. 메뉴는 스리랑카 전통 커리와 쌀밥, 닭고기와 바나나 등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해피센터를 찾은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심 목사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배식에 나섰고 어린이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스리랑카 식습관에 따라 수저와 젓가락 대신 오른손을 사용했다.
심 목사는 “아이들의 눈이 크고 예쁘다. 그런데 얼굴에 그늘이 많은 것 같다”며 “아무리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욕구가 채워지는 경험을 하면 행복을 느낀다. 해피센터가 떡과 복음으로 희망을 선물하는 구심점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심 목사 일행은 콜롬보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마투가마 지역 ‘평화유치원’도 방문했다. 이곳 주민의 4분의 1은 19세기 인도에서 이주한 힌두교 배경의 타밀족들로, 차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평화유치원에는 이들의 자녀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현재 3∼6세 어린이 18명이 미술 음악 기독교 교육 등을 받고 있다. 손자를 이 유치원에 보냈다는 바라마시완(70) 할아버지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엄마처럼 잘 돌봐준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 권혁·전영선 기대봉사단 활동은
“센터 개관 훼방 놓던 부모들이 아이 맡아달라고 부탁”
권혁 전영선 기대봉사단은 스리랑카 콜롬보 빈민지역인 맛탁쿨리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다. 빈민가에 외국인 부부가 들어와 가난한 현지인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신기한 일인 데다 이들이 해피센터를 세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기 때문이다.
2010년 문을 연 해피센터는 원래 버려진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시청 소유의 이 건물을 ‘회복의 장소’로 바꾸는 데는 난관이 많았다. 시청 관계자는 권 기대봉사단에게 구비서류를 끊임없이 요구했고 동네 청년들은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툭하면 훼방을 놨다. 그렇게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동안 권 기대봉사단은 1년 넘게 50차례나 시청을 드나들었고, 그의 가족들은 수시로 해피센터가 들어설 건물로 가서 직접 쓸고 닦으며 청소했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 어린이들의 육체와 영혼이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그들의 기도는 해피센터가 문을 열고 1년쯤 지나자 확실히 응답됐다. 해피센터를 다니던 유치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월등함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졌고 너도 나도 몰려왔다. 과거에 센터 개관을 방해하던 청년들도 부모가 됐고, 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를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해피센터는 현재 미취학 아이를 위한 유치원과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교사들은 모두 현지인 기독교인으로 구성돼 있어 기독교 영성 교육에도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무료 급식을 비롯해 비타민 지원, 정기 건강검진 등 어린이 영양 개선에 힘쓰고 있으며 몬테소리 교육으로 정서함양에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엔 지역사회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가옥 구조개선 작업도 펼치고 있다.
권혁 기대봉사단은 “불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배경을 가진 현지인들은 그들의 울타리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가 해피센터를 통해 ‘다른 세계’를 접하고 있다”며 “아이들은 스펀지와 같다. 누가 무엇을 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떡과 복음으로 다가간다”고 말했다.
콜롬보·마투가마(스리랑카)=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
[‘회복’ 캠페인] 정부도 포기한 슬럼가에 떡과 복음으로 희망 심는다
입력 2017-03-22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