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처럼 랜섬웨어가 지나갔다. 내 컴퓨터가 그렇게 트렌디한 바이러스에 걸릴 줄이야. 순식간에 한글 문서들이 ‘sage’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랜섬웨어라는 게 해커가 문서에 암호를 걸어두어 열리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라는데, 어쩌면 내 컴퓨터를 건드린 해커는 소설을 쓰는 놈인지도 모르겠다. 없어져도 무방한 여행계획 같은 건 건드리지도 않고, 주로 내 소설 원고가 모여 있는 폴더를 건드렸으니 말이다.
서둘러 낯선 항목을 지우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지운 게 해커와의 접촉 루트였다. 문서를 암호화한 해커들이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통로 말이다. 암호를 아는 해커만이 문서를 복구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 접촉 루트를 거쳐 해커와 거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트코인만 챙기고 결과적으로 파일을 복구하지 못하는(않는) 해커들도 있다고 하니 랜섬웨어는 과연 고약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백업을 해둔 덕분에 내가 잃어버린 게 전체의 5분의 1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다. 모든 문서를 통으로 날리는 것에 비하면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5분의 1도 수치로 측량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긴 하다. 사라진 5분의 1에 대한 미련(거기에 엄청난 소설의 유전자가 있었으리라는)은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그동안 컴퓨터가 업데이트를 하려 할 때마다 계속 다음에 하자고 말린 건 내가 아니었나. 결과적으로는 미루고 미루다 강제 업데이트를 당한 셈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기회에 묵은 문서들을 정리한 걸 수도 있고, 컴퓨터의 체중감량에 성공한 것도 같고, 단발머리가 된 것처럼 가뿐해진 느낌이랄까. 물론 아직 목 뒤가 썰렁하긴 하지만. 포맷 후 깔아둔 건 거의 신상이다. 한글도 최신 버전 체험판을 사용해보고 있는데, 버튼 하나로 점자 변환이 된다는 것에 놀랐고, 이전 버전에도 그 기능이 있었다는 것에 더 놀랐다. 내 감탄 역시 업데이트되지 못한, 구 버전이었던 것이다. 몇 년 묵은 신세계에 뒤늦게 들뜨면서, 그렇게 재건하는 요즘이다.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랜섬웨어
입력 2017-03-21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