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부극을 봤다. 텍사스주 그레이프바인이라는 마을에 지금도 있는 ‘외로운 비둘기 교회’가 1846년에 어떻게 처음 세워졌는지를 실화에 바탕을 두고 그린 ‘론썸 도브 처치(Lonesome Dove Church·2014)’와 왕년의 악명 높은 총잡이가 총을 버리고 고향에서 조용히 살려 했으나 마을을 장악하려는 악당들의 도발을 견디다 못해 다시 총을 든다는 대단히 익숙한 스토리의 ‘포세이큰(Forsaken·2016)’이다.
재미있는 것은 메인 못지않게 중요한 부차적 플롯으로 두 영화가 똑같이 선택한 게 ‘부자(父子)간의 갈등’이다. 성경 창세기 이래 끊임없이 되풀이해 천착된 인간사의 고전적인 테마다.
‘론썸∼’에서 아버지역은 ‘플래툰’(1987)의 반스 상사 톰 베렌저가 맡았다. ‘포세이큰’에서는 베테랑 성격배우 도널드 서덜랜드가 아버지, 도널드를 붕어빵처럼 닮은 실제 아들 키퍼가 돌아온 총잡이 아들역으로 나와 이채로웠다. 베렌저나 도널드 둘 다 훌륭한 배우지만 영화를 보면서 자꾸 할리우드 황금기의 서부극 스타 제임스 스튜어트나 게리 쿠퍼가 두 사람의 모습에 겹쳐졌다.
쿠퍼나 스튜어트 모두 한창 때는 멋진 건맨으로 서부극을 장식했으나 후년에는 겉으로는 엄해도 속은 자상한 ‘서부의 아버지’ 역할도 잘 해냈다. 대표적인 영화가 스튜어트의 경우 ‘셰난도(1965)’, 쿠퍼는 ‘우정 있는 설복(1956)’이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서부극의 고전 걸작이다.
그밖에도 서부극의 아버지 역으로 기억에 남는 배우로는 ‘홍하(Red River·1948)’에서 폭군적 가장이지만 속으로는 양아들을 매우 사랑하는 아버지를 연기한 존 웨인과 ‘부러진 창(1954)’에서 아들들에게 배신당하는, 리어왕 같은 아버지 연기를 보여준 스펜서 트레이시가 있다.
세월은 흘렀고 스튜어트도, 쿠퍼도 없다. 서부극도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옛날의 서부극과 스타들을 되씹어본들 무슨 소용이랴. 그나마 근근이 나오는 새 서부극과 새 배우에게 적응하는 수밖에.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114> 서부극의 아버지
입력 2017-03-21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