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과 평론가 겸 연극학자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가 손을 잡았다.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을 알리기 위해서다.
‘근현대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입센의 작품은 근대 사상과 여성해방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26편의 희곡을 남긴 그는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세계적으로 자주 공연되는 인물이다. 국내에도 해방 전까지는 대표작 ‘인형의 집’과 ‘민중의 적’이 자주 무대에 올랐다. 특히 당시 신여성들은 ‘인형의 집’에서 집을 뛰쳐나가는 여주인공 노라를 자신과 동일시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한국연극계는 영미권 희곡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입센의 작품이 나온 지 150년 정도 지났지만 시대를 초월한 시의성과 통찰력이 돋보인다”며 “해외에서 입센의 작품이 큰 인기를 끄는데 비해 한국에선 연극사적으로 중요한 작가인데도 공연이 잘 안 돼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김 단장과 김 교수는 2014년 각각 연출과 번역을 맡은 ‘사회의 기둥들’을 국내 처음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엔 ‘왕위 주장자들’을 국내 초연으로 선보인다. ‘왕위 주장자들’은 31일부터 4월 23일까지 서울시극단 20주년기념작으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사회의 기둥들’은 여객선 침몰과 사회 지도층의 부패를 다뤘고, ‘왕위 주장자들’은 13세기 노르웨이의 왕권 다툼을 그렸다. 전형적인 사회문제극인 ‘사회의 기둥들’은 당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역사극인 ‘왕위 주장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이라는 현재 시국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김 단장은 “두 작품 모두 세월호 사건이나 대통령 탄핵 전에 공연이 결정된 만큼 어떤 의도도 없었다. 하지만 입센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맞는 작품인지 새삼 확인하게 됐다”고 피력했다.
입센의 작품이 국내 무대에 자주 오르지 못하는 것은 희곡이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2010년 국내 처음으로 입센 연구서를 출간한데 이어 26편의 희곡을 모두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독일어, 영어, 노르웨이어 희곡 비교를 통해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김 교수는 “2006년 입센 서거 100주년을 맞아 노르웨이에서 열린 입센 페스티벌에 한국연극학회 회장으로서 초대받았다. 당시 전 세계 연극계 관계자들이 자국의 입센 연구와 공연에 대해 활발하게 이야기하는데, 우리나라는 1920∼30년대 외엔 얘기할 게 없어서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입센에 몰두해온 덕분에 희곡 번역도 조만간 마칠 것 같다. 다만 입센 희곡 전집이 예산 문제 때문에 제대로 출판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전했다.
김 단장은 “김 교수님이 입센의 작품을 모두 번역할 예정인 만큼 나는 모두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내년엔 입센의 ‘브란’을 국내 초연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연출가 김광보 단장-평론가 김미혜 교수, ‘입센 알리기’ 손 잡았다
입력 2017-03-21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