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생년월일을, 세이넨갓비(せいねんがっぴ·생년월일)를 한글로….”
2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312호 중법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 나온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생년월일을 묻는 재판부를 향해 눈만 깜박거렸다. 피고인의 주소와 생년월일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절차였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어로 “뭐야, 뭐하는 거야”라고 외쳤다. 그와 눈이 마주친 차남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은 “사이반(さいばん·재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롯데그룹 경영비리 재판에는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씨, 동주·동빈 형제, 장녀 신영자(75·수감 중)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총수 일가 5명이 모두 모였다. 검은 재킷을 입은 서씨가 오후 1시35분 가장 먼저 법정에 도착했다. 신 회장과 신동주(63)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뒤를 이었다. 경영권 분쟁 중인 동주·동빈 형제는 서로의 시선을 외면한 채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은 재판 시작 25분 뒤에야 법정에 도착했다. 신 총괄회장은 김 부장판사가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자 일본어로 “뭐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변호인단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회장님, 지금 재판을 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을 쳐다보며 “이게 뭐야. 뭐하는 거야”라고 묻자 신 회장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검찰이 수사를 했습니다. 여기는 법원입니다”라고 했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는 내가 만든 회사고, 내가 주식을 100% 갖고 있는 회사인데 왜 재판을 하느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냐”고 20분간 중얼거렸다. 이를 지켜보던 서씨는 하늘색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신 총괄회장이 손에 든 지팡이까지 휘두르자 결국 재판부가 “관련 절차가 끝났다”며 퇴정을 명했다. 신 회장도 끝내 눈물을 흘렸다. 신 총괄회장은 법정을 나가면서도 경상도 사투리로 “니 뭐꼬 이거. 왜 이러는 겨”라고 중얼거렸다.
1750억원대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총수 일가는 이날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신 총괄회장 측은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사재를 턴 적은 있어도,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적은 없다”고 했다. 법리적으로도 롯데 계열사에 구체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 회장 측도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 등에 대해 아버지(신격호)에게 말 한마디 못 들었다”며 “몇 년 전에서야 월급과 주식 통장을 간신히 받을 정도의 부자(父子) 관계였다”고 했다. 롯데 관계자들은 재판 시작 1시간 전부터 줄을 서 102석 방청석 대부분을 차지했다.
글=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롯데家 3父子’ 나란히 법정行… 경영비리 재판 시작
입력 2017-03-20 18:28 수정 2017-03-20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