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家 3父子’ 나란히 법정行… 경영비리 재판 시작

입력 2017-03-20 18:28 수정 2017-03-20 21:10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사진부터)이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롯데그룹 경영비리 관련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회장님 생년월일을, 세이넨갓비(せいねんがっぴ·생년월일)를 한글로….”

2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312호 중법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 나온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생년월일을 묻는 재판부를 향해 눈만 깜박거렸다. 피고인의 주소와 생년월일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절차였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어로 “뭐야, 뭐하는 거야”라고 외쳤다. 그와 눈이 마주친 차남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은 “사이반(さいばん·재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롯데그룹 경영비리 재판에는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씨, 동주·동빈 형제, 장녀 신영자(75·수감 중)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총수 일가 5명이 모두 모였다. 검은 재킷을 입은 서씨가 오후 1시35분 가장 먼저 법정에 도착했다. 신 회장과 신동주(63)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뒤를 이었다. 경영권 분쟁 중인 동주·동빈 형제는 서로의 시선을 외면한 채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은 재판 시작 25분 뒤에야 법정에 도착했다. 신 총괄회장은 김 부장판사가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자 일본어로 “뭐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변호인단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회장님, 지금 재판을 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을 쳐다보며 “이게 뭐야. 뭐하는 거야”라고 묻자 신 회장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검찰이 수사를 했습니다. 여기는 법원입니다”라고 했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는 내가 만든 회사고, 내가 주식을 100% 갖고 있는 회사인데 왜 재판을 하느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냐”고 20분간 중얼거렸다. 이를 지켜보던 서씨는 하늘색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신 총괄회장이 손에 든 지팡이까지 휘두르자 결국 재판부가 “관련 절차가 끝났다”며 퇴정을 명했다. 신 회장도 끝내 눈물을 흘렸다. 신 총괄회장은 법정을 나가면서도 경상도 사투리로 “니 뭐꼬 이거. 왜 이러는 겨”라고 중얼거렸다.

1750억원대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총수 일가는 이날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신 총괄회장 측은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사재를 턴 적은 있어도,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적은 없다”고 했다. 법리적으로도 롯데 계열사에 구체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 회장 측도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 등에 대해 아버지(신격호)에게 말 한마디 못 들었다”며 “몇 년 전에서야 월급과 주식 통장을 간신히 받을 정도의 부자(父子) 관계였다”고 했다. 롯데 관계자들은 재판 시작 1시간 전부터 줄을 서 102석 방청석 대부분을 차지했다.

글=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