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정세균 국회의장 “제왕적 대통령제 더 지속하면 대한민국 미래 없어”

입력 2017-03-21 18:53 수정 2017-03-21 21:01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장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정 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국회 운영과 개헌 및 조기 대선 등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최종학 선임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입법부 수장으로서 그 역할이 막중해진 정세균 국회의장을 지난 15일 만났다. 공교롭게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게 소환(21일)을 통보한 날이었다. 평소 온화한 미소로 정평이 나 있는 정 의장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심각한 표정을 자주 보였다. 인터뷰는 여의도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헌재의 탄핵 선고 직후 우리 정치가 탄핵됐다는 담화문을 내 화제가 됐습니다.

“이번 사태를 대통령 혼자의 허물로만 생각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우리 정치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권위주의, 정경유착, 부정비리 등의 허물이 한꺼번에 나타난 거지요. 정치인 모두가 남의 일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자택에서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놨어요.

“신뢰를 배반한 대통령으로 인해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겪고 있지요. 최순실 사태로 손상된 국가 이미지를 돈으로 따진다면 수십 조, 수백 조원에 달할 겁니다. 그렇다면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질 생각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덧나게 하는 발언을 한 거예요. 박근혜라는 정치인에게 다시 한 번 실망하게 하는 참담한 말씀이죠.”

-박 전 대통령이 정치세력화를 노린다는 시각도 있던데요.

“그런 복선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국민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고 외면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사법처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한 거 아닌가요.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이나 법원이 잘할 것으로 믿습니다. 정치권이 거기에 대해 개입하거나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치적 사면 얘기도 나옵니다만.

“(박 전) 대통령이 아직 자신의 허물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 아닌가요. 각종 혐의도 확인이 안 된 상황이고요. 검찰 수사도 안 끝난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우리 사법정의에 대한 모독이라고 봅니다.”

-탄핵으로 국정 운영의 축이 국회로 왔습니다.

“민생 안정과 흐트러진 국정을 수습하는 데 국회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지요. 황 대행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참으로 온당한 일입니다. 조금 전에 전화가 왔었습니다. 황 대행을 중심으로 정부가 중심을 잡고, 국회는 잘 협력해 국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대선 후보들이나 정당의 자세도 과거와는 달라야 됩니다. 역대 대선은 네거티브를 누가 더 잘하느냐를 겨루는 경연장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누가 국민을 더 위할 수 있는지, 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잘 만들 수 있는지 등 그런 비전과 전략을 갖고 경쟁하는 선거가 돼야 합니다. 대선 과정을 통해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지요.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국민을 편 가르고 하는 식의 캠페인은 옳지 않아요. 후보들과 제 정파가 심사숙고해 주기 바랍니다.”

-여·야·정 협의기구를 만들 생각인가요.

“이미 4당 원내대표 모임을 매주 월요일 정례화하기로 했습니다. 황 대행에게 정부와 국회가 협의할 수 있는 채널을 상시로 만들어놨으니 이걸 활용해 국민을 잘 보살피자고 얘기했습니다. 황 대행도 좋다고 하더군요. 정부에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참여하면 됩니다.”

-의장께서는 경제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에 특단의 대책이 있습니까.

“원 포인트로 될 수 있는 상황보다 더 심각합니다. 당장은 견딘다 하더라도 가계부채가 더 심각해질 수 있어요. 대외 여건도 최악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동안 부동산으로 경기를 부양하거나 빚을 많이 지게 해서 돌려막기를 하게 했거든요. 앞으로는 그런 식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고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을 유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상황이 아닙니다.”

-중국의 사드 보복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생겼습니다.”

-사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십니까.

“사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드가 진짜 미군만 보호하는 것인지, 수도권은 방어가 안 되는 것인지, 패트리엇과 어떻게 연동되는 것인지, 왜 그렇게 정부가 서둘러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모릅니다. 일언반구도 없이 자기들끼리 결정했고 그 이후에 국방부 장관이 몇 번 들르긴 했지만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정확히 알아야 판단을 하지요. 이런 부작용이 있지만 이런 긍정적인 면이 있어서 해야 한다든지, 이런 부작용이 우려되니까 안 한다든지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드에 대해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아요. 이 문제는 처음부터 국회로 가지고 왔어야 합니다. 정부가 결정하기 전에 국회와 협의했어야지요. 그리고 공동작전을 펴야 했는데…. 국가 예산이 1000억원이나 들어가면 당연히 국회에 와서 얘기를 해야지요. 아니면 아무 문제없이 잘 하든가요(웃음). 국회로 가져오면 시기 조절도 좀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국회 핑계를 활용해 중국에는 핵 문제 해결해라, 그럼 우리가 이거 안 해도 된다고 할 수도 있고요. 국회에다 갖다놓고 필요한 전략적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자기들 내부에서도 논의를 제대로 안 했다고 하잖아요.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졸속이고 국익을 심대하게 손상시키는 일을 저 무능한 사람들이 한 겁니다.”

-20대 국회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민주당이 입장을 바꿔 수정하자고 하더군요.

“양적으로는 같은 기간의 19대 국회보다 두 배도 더 일을 했습니다. 입법을 226% 많이 했지요. 그런데 질에 문제가 있습니다. 중요한 걸 못하고 있어요. 쟁점 법안을 못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성에 안 차는 겁니다. 영양가가 없는 거지요. 국회선진화법도 미세조정을 해야 합니다. 폐기시킬 필요는 없지만 비능률적인 거는 손대야 합니다. 지금은 한 정당이 발목을 잡으면 200명이 아니라 250명이 찬성해도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합니다. 골격은 두되 5년이나 시행을 했으니 최소한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동물국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식물국회에서 정상 국회로 가기 위한 미세조정이지요.”

-대선 전 개헌은 가능할까요.

“민주당을 뺀 3당만으로도 150명이 넘으니 개헌 발의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저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국회법에 맞으면 그 절차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고요. 다만 한마디 한다면 개헌 주장을 하는 것은 개헌에 성공하고자 하는 것이지 발의에 성공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헌은 꼭 성공해야 합니다.”

-선호하는 권력체제가 있나요.

“분권형 대통령제가 합리적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계속 더 가져가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습니다.”

-현재의 진보 우위 대선 구도가 이어질까요.

“민심이 옛날보다 스마트시대에 더 빠른 속도로 만들어집니다. 그렇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실패에 따른 영향이 있지 않겠습니까.”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가 만들어질 것으로 봅니까.

“정치공학적인 것보다는 근본적인 요인들을 갖고 국민들이 마음을 결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선은 대선이고 개헌은 개헌입니다. 대선은 후보의 비전이 어떤 것인지, 소통 능력이 있는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후보를 낸 정당의 퍼포먼스가 어떠했는지를 판단하는 겁니다. 대선과 개헌이 잘 믹스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차기 대통령은 어떤 리더십을 보여야 하나요.

“제일 중요한 것이 소통입니다. 국민과 정치권과 국회와의 소통이지요. 외교적인 소통 능력도 필요하고요.”

-다음 정부는 어느 당의 누가 잡더라도 여소야대인데요.

“소연정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만 파트너들이 너무 다 내놔라 하면 못하는 거 아닌가요. 소연정이 안 되면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죠. 대연정도 차선책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국회와의 협력이 잘될 것 같은 후보가 있습니까.

“이제는 다 달라졌겠지요. 최순실 사태를 봤으니….”(웃음)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가면 생각이 바뀌지 않나요.

“그 부분에선 국회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국회의원은 정당의 일원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수임을 받은 국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여당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 안 되고 국민들 눈치를 봐야지요. 책임이 꼭 청와대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청와대도 여당을 마치 하수인 다루듯 해서는 안 되지만, 여당 의원들도 당원보다도 입법부의 일원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게 수평적 당청관계인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정권에서 모두 잘 안됐지요.

“민주정부 10년 동안 많이 개선됐었는데 과거로 회귀해 버렸습니다. 이제는 정상화가 돼야 합니다. 탄핵 사태도 1차적으로 여당, 2차적으로 야당이 잘했으면 막을 수 있었을지 누가 압니까. 하도 은밀하니 알기 어렵긴 했지만.”

-차기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뭘까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절벽, 즉 인구절벽, 일자리절벽, 안보절벽, 외교절벽을 돌파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국내적으로 민생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무척 어려워진 4대국 외교도 풀어야 합니다. 외교에서 이렇게까지 사면초가였던 적이 없습니다.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의장 재임 중 꼭 이뤄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회’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가 3대 목표입니다. 행정부의 시녀나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것에서 벗어나 입법부가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역점 사업이 특권 내려놓기입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에서 내놓은 안이 대부분 입법이 되거나 제도화가 되고 있지요. 진짜 하고 싶은 것은 국회가 먼저 특권을 내려놓고 대통령, 장·차관, 검찰, 법원, 공공기관, 민간에 이르기까지 특권 내려놓기가 전 분야로 확산돼 대한민국이 더불어 잘사는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국회는 다 했는데 이 난리가 나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고민이지요.”

정세균 국회의장은

△전북 진안(67) △전주 신흥고·고려대 법학과 △고려대 총학생회장 △쌍용그룹 상무 △15∼20대 국회의원(6선·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서울 종로)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 △새천년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기조위원장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국회 예산결산특위 위원장 △국회 운영위 위원장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산업자원부 장관 △열린우리당 당의장 △민주당 대표

글=한민수 논설위원 mshan@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