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경축과 국민화합 차원에서 사면을 실시하는 것은 법질서 확립이라는 가치와는 참으로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정치적인 계산을 앞세운, 공감받기 어려운 사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와 서청원 의원 등의 특별사면을 의결한 2010년 8월 11일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에서 한 심사위원은 이같이 말했다. 과연 판결 선고 후 사정변경이 있거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향에서 실시되는 사면이냐는 지적이었다. “이미 우려할 수준을 넘었다”는 사면심사위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사면은 이뤄졌다.
특별사면은 헌법과 사면법에 따른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법조계는 역사적으로 사면의 정당성이 결여돼 있었음을 끊임없이 지적한다. 문민정부 이전까지는 정권의 유지 수단으로서, 이후에는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서 사면권이 남용돼 왔다는 비판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문제성 출연을 한 기업들 가운데에는 총수가 특별사면 시혜를 얻은 곳들이 많다.
1970년대 유신통치시대에는 사면이 독재의 전횡물로 이용됐다는 게 법학계의 연구 결과다. 당시 정부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긴급조치 위반 등의 굴레를 씌워 일단 중형을 선고한 뒤 곧이어 사면하기를 반복했다. 피고인들은 형량이 높을수록 의기양양했고, 판사에게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많았다. 특별사면이 잦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제5공화국을 두고 “특히 사면이 많이 행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양산된 시국 관련 사범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의 사면도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제5공화국에서는 특별사면·특별감형·복권이 무려 20차례 일어났다. 제6공화국에서도 7차례의 특별사면·복권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민간여객기 폭파로 115명의 희생자를 낸 살인범 김현희가 사면된 것을 두고 국민적 지탄이 컸다.
법조계에 따르면 특별사면권의 남용은 군사정권 이후에도 계속됐다. 구 정권의 비리사범 다수를 사면한 일은 결국 정치적 거래라는 비판을 샀다. 율곡비리사건, 동화은행사건, 한전비리 등의 부패사범들이 사면 대상이 되자 공분은 컸다. 대형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사면이 되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범죄자들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많았다.
문제성 사면은 대개 임기 말에 이뤄진다. 잘못된 사면의 첫손에 꼽히는 사례는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고 국헌을 문란케 했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이들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지만 같은 해 12월 22일 사면복권됐다. 당시 임기만료 직전이던 김영삼정부는 두 사람만을 위한 특별법까지 제정해 특별사면했다.
노무현정부 역시 임기만료를 앞둔 2008년 1월 1일 핵심 측근을 포함해 사면을 단행했다. 이명박정부도 2013년 1월 31일 사면을 단행했다. 박근혜정부는 지난해 CJ 이재현 회장이 포함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현재 CJ그룹은 검찰의 수사에 대비하고 있다. 김창근 전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2015년 8월 광복절 특사 명단이 확정된 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최태원 회장 사면해 복권시켜 준 하늘같은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선 김 전 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 회장의 사면 청탁을 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곤 “그랬겠어요?”라고 되물었다. SK그룹은 부인의 의미였다고 추후 설명했다. 경제 살리기 명분의 대기업 회장 사면은 SK뿐 아니라 여러 기업에서 역사적으로 되풀이돼온 일이다.
사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사면심사위원회에서도 논의된다. 대통령의 큰 뜻을 거스르지 못해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애써 찾는 장면은 5년 뒤 공개되는 회의록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디스크 수술한다고 잡범들은 나갈 수 있나요”라는 쓴소리도 있었다. 2010년 8월 11일 한 심사위원은 이같이 말했다. “과연 제가 여기에서 얼마나 거부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 없지 않습니다… 지난번 사면할 때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들은 다 되었죠. 그게 상당히 국민 정서에 반한 것은 분명했어요.”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면 논란… 대통령, 정치적 거래? 화합·경제살리기?
입력 2017-03-20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