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문제로 철거가 예정된 서울역 고가도로를 국내 최초의 공중보행로로 재생하는 ‘서울로 7017’이 5월 20일 개장한다. 고가도로 위쪽은 물론이고 그 아래쪽에서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개장이 임박함에 따라 주변 동네의 기대감도 부풀고 있다.
가게자리 찾는 이들… 부동산도 들썩
지난 16일 오후 찾아간 중림동의 한 부동산에서는 “예전과 달리 상가를 얻으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이 부동산 주인은 “이 옆에 있는 커피숍도 고가를 기대하며 생긴 것이고, 저 위의 스테이크 집도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다”면서 “가게를 내겠다며 사람들이 찾아오는 건 이 동네에선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중림동 골목길에서는 전선 지중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동네에서 30년간 거주했다는 50대 주민은 “KTX나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사람들이 와도 여기는 볼 게 없으니까 들르지 않는다”면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던 이 동네가 고가공원 때문에 북적이게 됐다”고 말했다.
만리동의 한 부동산중개소 소장은 “고가공원 발표가 난 후 아파트 가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2015년까지만 해도 여기 부동산 가격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물가상승률만큼도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2016년부터 고가 공원 만든다는 소문이 돌고 실제 공사가 시작되면서 27평짜리 오피스텔 가격이 몇 달 만에 1억원 가량 올랐다”고 했다.
교통이 막힌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많았다. 만리동에서 남대문시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기사는 “고가가 폐쇄되니까 길이 너무 막힌다”며 “만리동 고개의 차량 통행이 확 줄었다. 여기가 너무 막히니까 옆으로 돌아가는 차들이 많다”고 말했다.
고립됐던 역사문화 자산들 부활하나
서울시와 중구는 동네 상권과 함께 이 지역의 역사문화 명소들도 함께 부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서울로 7017이 근처의 잊혀진 문화관광 자산들로 시민들 발걸음을 유도하고 서울시의 관광자원을 풍부하게 만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일단 서소문공원이 주목된다. 서소문공원은 도심에 자리하고 있고 천주교 순교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연결이 뚝 끊겨 노숙자들이나 찾아오는 공원이 돼버렸다.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 방한 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서소문공원이었을 정도로 가톨릭계에서는 중요한 공원이다.
현재 서소문공원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중구가 서소문역사공원으로 재단장해 내년 3월 개장할 예정이다. 중구는 서소문역사공원을 인근의 약현성당과 연계하고 명동성당, 새남터성지, 당고개성지, 절두산성지 등과 이어지는 성지순례길을 조성한다. 약현성당은 명동성당보다 더 오래된 성당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지만 역시 고립돼 있었다. 약현성당 측은 “서울로 7017이 개장되고 서소문공원이 조성되면 그동안 조용했던 성당이 너무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서소문공원과 서울로 7017 사이의 ‘염천교 수제화 거리’도 부활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1925년 경성역 건립과 함께 시작된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손기정체육공원 역시 서울로 7017과 연결되면서 시민들에 의해 새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손기정체육공원은 손기정의 모교인 양정고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공원으로 손기정 동상, 손기정기념관, 체육시설 등이 있다. 손기정기념관 안내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20대 여성은 “손기정체육공원을 관광상품화하기 위한 ‘손기정&남승룡 프로젝트’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은 어떨까? 서울로 7017의 퇴계로방향 끝단은 곧바로 남대문시장 5번 게이트로 연결된다. 남대문시장을 지나 명동, 남산, 청계천 등으로 갈 수도 있다. 서울시는 KTX를 타고 올라온 지방 사람들이나 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내린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로 7017을 구경하다가 남대문시장까지 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서울로 7017에 반대해온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남대문시장상인회의 한 간부는 “봄과 가을에야 그렇다고 해도 여름이나 겨울에 고가에 올라가 걸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면서 “서울로 7017을 따라 남대문시장으로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간부는 교통 혼잡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고가가 폐쇄되고 나서 러시아워 시간에 이 일대가 지옥이 됐다. 신호를 수십 번 받는다. 그런데도 남은 차도를 또 줄이고 있다. 보행로를 넓힌다면서.”
전문가들 “단절된 도심 연결” 높게 평가
전문가들은 서울로 7017 개장의 의미와 파급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반정화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로 7017 개장으로 서울역이 진정한 중앙역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했다. 반 연구위원은 “외국의 도시들을 보면 중앙역을 가지고 있다. 중앙역이 그 도시로 들어오는 입구이자 그 도시를 향해서 나가는 관광의 앵커 역할을 한다”면서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들어와서 바라보는 서울시의 첫 인상이 공중보행로라는 점은 대단히 매력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서울역이 중앙역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영욱 오기사디자인 대표는 “도시의 명소들이 점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선형으로, 길로 이어지는 게 도시가 풍부해지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서울역고가의 장점으로 전복성을 언급한 점도 주목된다. 그는 “차도였던 곳을 사람들이 걷는다는 전복성이 있다”며 “그동안 우리는 보행의 눈높이에서 도시를 바라봐 왔다. 서울역고가는 눈높이가 아주 새롭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눈높이와 장소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조경과 교수는 “자동차에 점유됐던 고가도로를 보행의 공간으로 바꾼다는 것, 걸어서 도시를 산책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도시 변화의 흐름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가가 완공되면 주변의 많은 역사문화 자원이 연계된다”며 “서소문공원, 손기정체육공원, 남대문, 한양도성, 남산으로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조경민 사단법인 서울산책 대표 역시 “하루 4만여대가 다니던 차도를 보행로로 만든다는 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실험”이라며 “단절된 도시를 연결한다는 게 서울역고가의 가장 큰 의미”라고 얘기했다. 그는 “개장이 되면 주변 주민들과 회사원들의 일상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계동 주민들이 걸어서 남대문시장을 갈 수 있다. 도심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산책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도시민의 일상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점이야말로 의미가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서울로 7017’이 열린다] 단절된 도시 연결… 동네·역사문화 ‘부활 날갯짓’
입력 2017-03-20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