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우리 경제의 우울한 현실이 확인됐다. 17∼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회의가 열리는 동안 중국 재정부장과는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았다.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련해 미국 측의 적극적인 답변을 얻어내지도 못했다. G20은 공동선언문에서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기존 문구를 빼버리면서 세계 무역환경의 변화를 예고했다.
19일 정부에 따르면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샤오제 중국 재정부장의 양자면담을 추진했다. 하지만 중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본회의가 임박할 때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결국 일정이 맞지 않는다며 면담을 거부했다. 샤오 부장은 회의장에서 유 부총리와 잠깐 인사를 나눌 때도 무뚝뚝한 표정과 행동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사드 해법 논의를 떠나 면담 자체를 거절한 것은 중국이 당분간 우리나라와 긴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드 배치를 결정한 우리 정부를 향해 압박 강도를 높이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때 중국과 양자회담을 다시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중국이 한 달 만에 전향적으로 대화에 나설지 불투명하다.
중국에 이어 미국과도 경제 현안에서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되레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만 커졌다.
유 부총리는 지난 17일 트럼프 행정부의 첫 재무장관인 스티븐 므누신 장관과 양자면담을 가졌다. 다음 달 미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유 부총리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당국의 일방적 개입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인구구조 변화, 저유가 등 구조·경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고 환율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므누신 장관은 “알겠다”고만 답했다. 그는 북한 제재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은 10분 정도 진행됐다. 시간이 촉박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현안은 논의조차 못했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 보호무역 기조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G20은 미국의 반대로 최종 공동선언문에서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기존 문구를 삭제했다. 보호무역 철폐는 그간 G20 공동선언문의 단골 문구였다.
대부분 회원국은 자유무역주의 확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모으면서도 이와 관련한 문구 삽입은 망설였다고 한다. 선언문 작성에 앞서 프랑스와 호주 등 일부 국가가 강한 우려를 표시했지만, 결국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면 우리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당장 수출에 빨간불이 켜진다. 환율조작국 지정과 한·미 FTA 재협상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유일호 ‘사드 보복·환율조작’ 빈손 외교… 中 아예 못만나고 美 적극적 답변 못얻고
입력 2017-03-20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