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60)는 대중적 사랑을 받는 작가다. 욕심이 좀 많아서 에세이스트로도 이름을 알렸다. 오십대 중반에는 소설도 썼다. 이름 하여 ‘그림 소설’. 그의 두 번째 그림 소설집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노란잠수함)가 5년 만에 나왔다.
“대개 글 먼저 쓰고 거기 맞춰 그림을 그리잖아요. 이건 달라요. 평생 그려온 제 그림들에서 영감을 얻은 뒤 상상의 날개를 펼친 소설들이거든요.”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그림처럼 친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도그 시리즈는 단편 ‘불도그 편지’, 아프리카 여행 시리즈는 ‘바오밥 나무를 좋아하세요?’, 안경 시리즈는 ‘한 남자와 두 번 이혼한 여자’로 탄생했다. 30대 시절 일기처럼 그려온 흑백 그림 시리즈는 그룹 ‘산울림’의 동명 노래에서 제목을 딴 단편 ‘아마 늦은 여름 이었을 거야’의 소재가 됐다.
수록된 7편은 그의 그림 여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소설 ‘불도그 편지’는 남동생이 단독 주택에 사는 화가 누이에게 개를 맡기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딱 봐도 작가의 자전적 얘기다. 그는 동생을 유난히 따랐던 불도그를 모델로 38점의 그림을 그렸었다. 또 어릴 때부터 안경을 쓴 작가는 안경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급기야 그림 소재까지 삼아았는데, ‘한 남자와 두 번 이혼한 여자’는 안경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치매 걸린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죽은 아내로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발랄한 화풍 탓에 예상도 못했는데, 소설들에선 뜻밖에 슬픔이 배어나온다. “이번 책은 이별에 대한 명상을 담았어요.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이 공통적인 주제지요. 사실 방법이 없더라고요.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회상조의 말투 같아 흠칫 놀랐다. 그는 근년에 남동생을 뜻하지 않게 떠나보낸 아픔을 겪었다. 거기서 길어 올린 사유가 소설 전반에 흐른다. 화제를 돌리려 “욕심이 많은 것 같다”고 물었다. 그는 “소설은 본업이 아니라서 자유롭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을 쓰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고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출판사를 경영했고, 어머니가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그 덕분에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황 작가.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로도 나선 그의 항변이 똑 부러진다.
“한 개만 제대로 하라지만, 세 개를 다 잘해야 돋보이는 사람이 있지 않겠어요. 할 수 있는 두 장르를 같이 함으로써 서로 윈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론 이런 사람이 많이 나올 거예요.”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황주리 “욕심 많다고요? 소설을 쓰면 숨통이 트여요”
입력 2017-03-21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