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방 예산과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예산을 대폭 늘린 내년도 예산안을 의회에 공식 제출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명목으로 국방·국토안보·보훈부 예산을 대폭 늘렸고, 환경·보건·교육 등 나머지 12개 부처 예산은 줄줄이 삭감했다.
‘미국인의 안전’을 위하고 ‘행정 국가’를 탈피하겠다는 트럼프의 의지가 담겼지만 워낙 반발이 거세 심사 과정에서 심한 마찰이 예상된다.
백악관은 16일(현지시간) 2018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재량지출 예산안을 의회에 보냈다. 예산안에는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예산 청사진(America First, A Budget Blueprint to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국방비 증액이다. 국방예산은 전년 대비 10%(523억 달러·약 59조2000억원) 늘어난 5740억 달러(약 650조원)로 편성됐다. 냉전시대 옛 소련과 군비경쟁을 하던 1980년대 이후 가장 큰 폭의 증액이다. 국방예산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과의 전쟁, 해군 함정 추가 도입, 전투기 프로그램 등 각종 군사력 증강에 사용된다.
퇴역장병 처우 개선을 위한 보훈부 예산은 올해보다 44억 달러(6%·약 5조원) 늘어난 789억 달러(약 89조원)를 요구했다. 국토안보 예산도 28억 달러(8%·약 3조1700억원) 늘어난 441억 달러(약 50조원)를 배정했다. 이는 대부분 불법이민 차단을 위한 ‘멕시코 장벽’ 건설에 투입될 자금이다.
환경과 외교 등 다른 분야 예산은 직격탄을 맞았다. 환경보호청(EPA) 예산은 무려 31%(26억 달러·약 3조원) 삭감된 57억 달러만 배정됐다. 예산 삭감으로 EPA 공무원 수천명이 해고되고 수십개의 환경 프로그램이 폐지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외교 예산도 유엔분담금 등 대외원조 예산에서 109억 달러(29%·약 12조3500억원)가 삭감돼 271억 달러로 줄었다.
이밖에 노동부 25억 달러(21%·약 2조3700억원), 농업부 47억 달러(21%·약 5조3200억원), 보건복지부 126억 달러(16%·약 14조2700억원), 교통부 24억 달러(13%·2조7100억원), 상무부 150억 달러(15.7%·약 17조원), 교육부 92억 달러(13.5%·약 10조원)의 예산이 삭감됐다.
이에 따라 각종 빈곤퇴치기금, 저소득층 에너지지원 프로그램 등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와 학술지원 프로그램, 공영방송공사(CPB) 예산도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야당인 민주당은 “(예산안은) 미국의 미래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강력 반발하는 데다 공화당에서도 민생 예산 축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원안대로 예산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고 향후 의회 심의 과정에서 대폭 수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
트럼프 예산, 국방·장벽건설 빼고 다 줄였다
입력 2017-03-17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