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유인’‘前 정부와 차별화’… 조직개편 관행처럼 굳어져

입력 2017-03-17 17:58

지난달 24일 국회입법조사처 세미나에서 제기된 역대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평가는 명료했다. 지나치게 개편이 잦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게 원인이다. 특히 정권교체 후 초기 조직 개편은 효율성보다 이 부분을 훨씬 더 중시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차별화=표심’이라는 공식을 염두에 둔 대통령 당선자들이 5년마다 칼을 휘두르는 상황은 일상화했다. 임기 중에도 악화된 여론을 돌리기 위해 조직 개편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안전처 등을 신설한 사례도 이에 속한다. 최성욱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조직 개편 신화의 해체: 반성과 대안’이라는 발표문에서 역대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을 정치적 이해에 따라 잘 포장되거나 꾸며진 ‘정치적 수사(修辭)’라고 표현했다.

정치적인 이유, 또 상황 변화에 따른 필요성이 뒤섞이면서 우리나라 정부조직법은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개정됐다. 17일 행정자치부 정부조직 관리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법률 제1호로 공포한 ‘정부조직법’은 박근혜정부까지 모두 62회 개정됐다. 정권마다 적게는 3번에서 많게는 20여번에 이른다. 규모도 천차만별이다.

출발은 11부·4처·3위원회부터였다. 제2공화국까지 이렇다할 큰 변화가 없었던 정부조직 개편은 5·16 군사정변 이후 급박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맡은 1961년부터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행사하는 최고의결기구로, 첫 개편에서는 1원·12부·1처·3청·2위원회로 조직을 꾸렸다. 경제장관회의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정부조직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또 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취임 이후 개편은 곧바로 진행됐다. 1980년 10월 사회 정화를 표방한 ‘사회정화위원회’ 신설이 시작이다. 경제발전 논리를 내세웠던 전 정부와 차별화 수단으로 사회부처 개편에 역점을 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 첫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회정화위원회 폐지부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통령 임기 초반의 정부조직 개편은 전 정부와의 차별화 수단으로 부각됐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 지향이라는 관점에서의 첫 조직 개편은 부처 통합 작업이었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직후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정경제부 격상 등의 개편으로 전 정부와의 차별화에 힘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조직 개편이 가장 적었던 시기로 회자된다. 대신 다양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립해 차별화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도 각각 ‘녹색성장’ ‘창조경제’를 내세우며 정권 초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마지막 개정은 지난해 1월 시행됐다. 메르스 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대다수 정권이 초기에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이 차별화 외의 목적도 있다고 판단한다. 공무원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사례만 봐도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후 각 부처는 부서 이름에서 ‘녹색’을 없앴다. 사회부처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에서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내각을 구성하고 전 정부 색채를 없애는 작업이 일상적”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m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