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조직개편 說說… 공직사회 ‘공포’

입력 2017-03-17 18:08 수정 2017-03-17 21:21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주요 경제부처는 최근 직제에 없는 비선(秘線)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조기 대선 실시로 9개월 먼저 들어서는 새 정부가 출범과 함께 단행할 수 있는 조직 개편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된 장·차관 등 ‘윗선’이 조직을 지키기 위해 직접 뛰는 게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다수 부처가 보직이 없는 과장 등에게 팀을 맡겨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는 이유다.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17일 “정부조직 개편은 공무원들에게 가장 민감하기 때문에 각 부처가 많은 역량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직사회가 정부 조직 개편 ‘포비아’(phobia·공포)에 빠졌다. 대선까지 남은 두 달 동안 정책은 뒷전이고 유력 대선 주자의 조직 개편 방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 부처는 공식적으로는 “조직 개편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뒤로는 정치권 로비와 ‘자기 식구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당장 경제 수장 부처인 기재부는 최근 정기 인사를 단행하면서 정책 역량 극대화보다는 정부 조직 개편에 중점을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정책과 예산 파트가 다시 분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자 예산실 근무 경험이 많았던 비 예산실 소속 과장 7명을 예산실로 인사조치한 것이다. 정책 파트에서 실력을 인정받던 모 과장은 별다른 이유 없이 5개월 만에 인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인사 때 아무리 좋은 보직이 있어도 과장들이 자기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고 전했다. 현 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로 적을 옮겼던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도 미래부가 폐지 1순위 부처로 꼽히자 산업부로 복귀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 말기에 본업은 제쳐두고 조직 개편 대응에만 몰두하는 공무원을 탓할 수 없다. 조직 개편이 곧 정부 혁신이라는 잘못된 틀에 사로잡혀 5년마다 부처를 붙였다 떼다 한 정치권이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관료 출신의 한 현직 장관은 이명박정부 초기 지방 소도시에서의 하룻밤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그 부처의 핵심 국장이었지만 당시 가장 중요한 업무는 같은 대학 출신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조직 담당 교수에게 부처 입장을 전하는 일이었다. 그는 “안 만나주는 그 교수를 보기 위해 지방 소도시 대학의 처마 밑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다”며 “10년 전보다 더 어려운 경제 현실에서 그런 식의 국가적 비용 낭비가 과연 적절한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유력 대선 주자들은 다양한 정부조직 개편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인수위 없이 바로 정부가 출범하기 때문에 조직 개편 관련 대선 공약이 곧 현실이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는 데 1∼2개월이 걸리고 이후 이에 따른 장관 인선 및 청문회까지 생각하면 올 하반기는 정부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건국대 행정학과 권용수 교수는 “정권교체가 갑자기 이뤄진 상황에서 대규모 정부조직 개편으로 인한 행정 혼란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부처의 대폭적인 신설·통합·폐지보다 부처 간 기능 조정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서윤경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