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가짜뉴스’ 세상… 사람 잡은 ‘거짓 대자보’

입력 2017-03-18 00:05

‘가짜 뉴스’는 더 이상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갑남을녀 일반인도 ‘가짜 뉴스’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한 대학에서 장래가 촉망되던 교수가 학생이 쓴 거짓 대자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밝혀졌다.

주목받는 조각가로 이름이 알려졌던 부산 모 사립대 교수 S씨(33)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해 6월 7일 오후 9시50분쯤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9층에서 몸을 던졌고 주민들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투신 직전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억울하고 괴롭다”는 말을 남겼다. S교수는 학교에 대자보가 붙은 뒤 자신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되자 고통을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유족들은 사건 직후 “S교수의 결백을 밝혀 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자보를 게시한 장본인은 이 대학 학생회 간부 A씨(26)였다. A씨는 지난해 5월 19일 대자보를 통해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지난 3∼4월 진행된 야외 스케치 행사 후 술자리에서 대학교수가 여학생의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고 밝혔다.

대학의 진상조사 결과 실제 술자리에서 여학생의 속옷과 엉덩이를 더듬는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가해자는 S교수가 아니라 C교수와 D강사였다. D강사는 성추행 사건 직후 출강을 중단했지만 C교수는 피해 학생에게 접근해 ‘아무 일(성추행) 없었다’는 다짐을 받고 범행을 덮었다. C교수의 보복이 두려워 말을 아끼던 피해 여학생은 지난해 10월에야 학교 측에 C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알렸고 대학 측은 최근 C교수를 파면했다.

하지만 대자보가 게시된 직후 실제 가해자와 상관없는 S교수가 가해자로 지목됐고 사실과 다른 소문이 학내에 퍼져나가면서 S교수는 이 때문에 괴로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조사 결과 A씨가 대자보를 게시한 이유는 황당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B교수가 수차례에 걸쳐 ‘S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밝혀야 한다. 네가 진상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B교수는 당시 시간강사를 성추행했다는 투서가 접수돼 내부 감사를 받는 상황이었는데 자신의 재임용 등을 위해 다른 사건을 부각시키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엉뚱한 이유로 시작된 ‘가짜 뉴스’가 결백한 사람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사건을 조사한 부산 서부경찰서는 허위 내용을 유포한 혐의(명예훼손 등)로 A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은 공범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A씨는 졸업을 며칠 앞둔 지난달 퇴학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