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경렬] 불법체류 외국인도 보호한다

입력 2017-03-17 17:32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명을 넘어섰고, 약 10%에 해당하는 20만여명의 외국인이 불법체류 상태이다. 증가 추세의 외국인 범죄와 외국인 범죄에 대해 느끼는 일반 국민의 인식을 감안할 때 ‘체류 외국인 200만명’은 경찰 업무에 새로운 치안활동 과제로서 무거운 의미를 던지고 있다. 한편, 체류 외국인 중 상당수의 불법체류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범죄 피해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치안 과제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체류 외국인이 범죄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법체류로 인한 강제 추방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조차 못하고 숨죽여 지내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게 범죄 피해 신고는 존재의 이유다. 체류기간이 경과했다고, 체류 목적 외 활동을 한다고 범죄 피해를 당했음에도 신고조차 못하는 인권침해 상황이 방치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경찰은 2013년 3월부터 ‘불법체류자 통보의무 면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총 460명의 불법체류 외국인이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제도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는 최근 사례를 살펴보자.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여름, 어느 날 오후의 정적을 깨며 국제범죄수사대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선을 타고 전달된 다급한 목소리. “태국 여성이 감금당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대요. 지금 바로 조치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울시 글로벌센터 상담요원의 전화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수사팀은 피해 여성이 보내준 주변 건물 사진을 분석, 피해 여성의 위치와 마사지 업소를 특정하고 즉시 단속에 들어갔다.

업주를 검거하고 마사지 업소 옆 창고를 개조한 숙소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해 여성을 발견한 수사팀은 조심스럽게 접근해 영어로 말했다. “경찰입니다. 신고받고 당신을 구출하고자 왔습니다.” 여전히 불안해하며 여성이 되물었다. “경찰요, 정말 경찰인가요?” 경찰임을 확신하는 순간 의심의 눈빛이 걷히고, “Thank you”를 연신 반복하며 그녀는 털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수사관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관광비자로 입국한 태국 여성은 여권을 빼앗기고 감시당하면서 성매매를 강요받고 있었다. 체류목적 외 활동이 불법임을 알고 있었기에 경찰 구조 요청을 생각지도 못하던 그녀는 글로벌센터 상담원의 도움으로 불법체류 자체가 경찰 신고에 어떠한 장애가 되지 않음을 알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었다. 수사팀은 피해 여성의 불법체류 사실을 문제삼지 않았다. 대신 성매매를 강요당한 범죄 피해자로 보고 보호조치했으며, 감금과 강요로 성매매를 알선한 브로커 등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체류 외국인 200만명 시대, ‘반만년 단일민족’임을 외쳤던 우리였지만 이제 ‘단일’이라는 형용사보다는 ‘다문화’가 더 어울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 체류의 합법성 내지 불법성을 떠나 그들의 안전과 안정적 정착은 우리 사회 공동의 목표가 되었다. 경찰은 국내 체류 외국인이 우리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고 있다. 그들이 범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줄이고, 범죄 피해를 당한 외국인을 한 명이라도 더 살펴 구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인종과 피부색에 문맹(文盲)이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 사회가 성공할 수 있다.

허경렬 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