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화제] 베네수엘라 빵집들 케이크 못 굽는 까닭

입력 2017-03-17 00:01
사진=신화뉴시스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바게트를 많이 만들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어길 경우 빵집을 몰수하겠다고 경고했다. 15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빵 기근은 심각한 수준이다. 빵을 구하지 못해 빵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 이에 정부는 전국 빵집에 최소 90%의 밀가루를 바게트를 만드는 데 쓰고 나머지로 케이크와 크루아상 등 ‘고급 빵’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또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계속해서 빵을 판매하고, 재고를 비축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빵집들은 이 같은 가이드라인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본다. 올 들어 밀가루 수입이 크게 줄어 충분한 빵을 생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베네수엘라는 밀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정부가 일괄 수입해 제분한 뒤 각 빵집에 할당한다.

정부는 빵집의 이기심을 탓하고 있다. 값싸고 양 많은 바게트 대신 고급 빵을 팔아 주머니를 채운다는 논리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12일 수도 카라카스의 제과점 709곳에 조사관을 보내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있는지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빵을 숨기는 투기꾼은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렉 엘 아이사미 부통령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는 빵집을 몰수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경제는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저유가의 늪에 빠져 있다. 지난해 국민 10명 중 7명의 체중이 평균 9㎏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는 굶주림의 실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정부의 실정을 비꼬아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신조어도 나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