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대통령 탄핵 선고 직후 진도 팽목항을 찾아가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이 문장을 본 순간, 촛불집회에 대한 몇 가지 의문들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지난해 10월 29일 토요일 이후 4개월 넘게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 위에는 세월호 아이들이 별이 되어 떠 있었다. 아이들이 죽어서 별이 되었다는 얘기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었다. 촛불집회는 이례적인 장기전이었다. 더구나 겨울이었다. 시민들은 추위에 떨면서 끈질기게 광장에 모였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고,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광장에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광장에서 표출된 시민의 힘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연인원 1600만명이 4개월 넘게 주말마다 집회를 하면서도 폭력 사태는 없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가장 경이로운 대목은 비폭력이었다. 그들은 조직되지 않은 대중들이었고 뚜렷한 지휘부도 없었다. 그러나 혼돈은 없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처음부터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가장 높은 수위의 요구를 내걸었다. 진실은 드러날 듯하다가 숨어버리기도 했고, 탄핵은 당연한가 싶으면서 또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반박과 사과, 동정론 등을 영리하게 구사하며 피로한 시민들을 교란하고자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타협하지 않았다.
무엇이 광장의 시민들을 그토록 치열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들은 왜 그렇게 단호했을까? 그러면서 어쩌면 그리 평화롭고 낙천적일 수 있었을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텐트가 있고, 세월호 아이들의 슬픔이 서린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는 항쟁이라기보다는 간절한 기도처럼 보였다.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은 건 물론 대통령에 대한 분노였다. 그 분노를 권력 사유화나 국정농단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세월호가 있었다. 세월호 이후 시민들은 마음속에서 대통령을 이미 탄핵했던 게 아닐까. 세월호 참사 당일과 그 이후 보여준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 거짓말 등은 대통령과 국가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국정농단 사태는 마음속의 탄핵을 현실의 탄핵으로 결행하게 한 계기로 작용했다.
도대체 세월호가 왜 그렇게 문제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시민들이 왜 아직도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고, 세월호 얘기에 눈시울을 붉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고란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구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대통령을 비난하느냐고 따진다. 헌법재판소도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지 않았느냐고 덧붙이면서.
그들에게 헌재 결정문 뒤쪽에 붙은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두 재판관은 “대규모 재난과 같은 국가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그 상황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까지 갖는다”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상징적으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재난 상황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자체로 구조 작업자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구조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며,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정부가 위기 상황의 해결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어 최소한의 위로를 받고 그 재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갖게 한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세상만사-김남중] 촛불광장의 별빛
입력 2017-03-16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