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목공 입문기

입력 2017-03-16 17:28

목공클래스에 덜컥 등록을 했다.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것 외에 손을 놀려서 뭔가를 생산하는 일에는 도무지 젬병인 나다. 대표적인 게 그림 그리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은 내 옆을 지나가다 너 그림 진짜 못 그린다, 일갈했었다. 그 말에 마음이 상하지도 않았다. 내가 봐도 진짜 못 그린 데다 잘 그리고 싶은 생각도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요리, 바느질, 뜨개질도 빵점이었다. 가사실습 시간에 내가 만든 음식이나 블라우스는 정말이지 재앙이었다. 당연히 그런 일에 나설 의사도 전혀 없었다.

그나마 손을 놀려 뭔가를 만드는 게 흥미 있었던 건 당시 유행하던 ‘패널’이라는 물건이었다. 영화배우 얼굴 포스터나 달력그림을 붙여 벽에 걸 수 있는, 일종의 나무 액자였다. 마당이 넓었던 우리 집에는 목재가 많았다. 나는 합판을 자르고 막대도 잘라 탕탕 못을 박아 대충 열심히 패널을 만들었다. 톱질과 못질, 사포질은 재미있었다.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최근, 이것저것 기웃거리던 중 애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다가와서 철컥 붙은 게 목공 수업이다. 천장 높고 드넓은 공방 벽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기대 선 향기로운 목재들을 보면서 꿈에 부풀었다. 대패, 톱, 끌, 망치 등등 도구들이 꽃미남 탤런트의 얼굴보다 빛나 보였다. 옷걸이, 책장, 쟁반, 캣 타워, 서랍장 등등 만들어야지! 그러나 선생님 말씀. 스케치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허걱! 그러고 보니 내가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물건들은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라 글자 모양으로만 머릿속에 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래, ‘어떻게 생긴’을 당연히 정해야겠지. 최소한 넘어지지는 않도록 ‘설계’도 해야 할 것이며, 정교하게 재고 자르고 다듬기도 필요하겠지. 모두 내가 젬병인 손재주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좌절과 낙담에 사로잡힐 것 같았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스케치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르면서 생전 낙서도 않던 내가 그림 비슷한 걸 그리고 있다. 제주 와서 뭘 잘못 먹은 건가?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