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사람이 싫어지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감해질 때가. 1992년, 남자의 마음이 딱 그랬다. 일본 교도통신 기자였던 그는 ‘약삭빠른 얼굴로 세상을 냉정하고 재빠르게 분석하는 일상’을 보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투명한 비닐 막으로 빈틈없이 덮인 것 같다. 이 막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꽉 막혀 있던 내 모든 감각기관을 되살리고 싶다.’
남자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어떤 여행이어야 할까.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지인과 현지 음식을 먹어보는 건 어떨까. 남자는 치과에 들러 텅 비어 있던 잇몸 곳곳에 의치(義齒) 4개를 박아 넣은 뒤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94년 봄까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15개국을 여행한다.
남자의 이름은 헨미 요(邊見庸·73). 언론인이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가다. 그가 내놓은 ‘먹는 인간’은 음식을 통해 세상과 인간의 속살을 들여다본 보고서다. 저자가 맺음말을 통해 소개한 이 책의 내용은 이렇다. ‘고매하게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에 의존해 ‘먹다’라는, 인간의 불가결한 영역에 숨어들어 보면 도대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그 광경을 그린 것이 이 책이다.’
저자가 택한 첫 여행지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였다. 당시 기준으로 한화 75원 수준인 쌀밥을 사먹다가 한 젊은이가 자신을 향해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그건 먹다 남은 음식이에요.”
부자들이 남긴 음식 찌꺼기였던 것이다. 저자는 접시를 내려놓는데, 열 살쯤 되는 소년이 다가와 접시를 낚아채 도망친다. 부자나라 일본에서 날아온 그는 가난의 깊디깊은 수렁을 체감한다.
기자이기 때문일까. 세상은 이렇게 변해야 한다거나, 사람은 원래 이런 존재라는 식의 내용은 거의 없다.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충실히 옮긴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하지만 세상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거나, 배고픔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 사람을 안타까워하는 뉘앙스는 진하게 녹아있다.
예컨대 과거 베트남 하노이 특파원이었던 그는 3년 만에 하노이를 찾는데 현지인들이 쌀국수를 씹어 삼키는 속도가 빨라졌음을 직감한다. 그러면서 넌지시 이런 독백을 끼워 넣는다. ‘이 나라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좀 더 가까워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빨리 먹는 것이 좋지는 않지만 말이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를 찾았을 때는 기근과 폭력의 참상을 목격한다. 영양실조와 갖은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만난다. 당시 소말리아 사람 중에는 마약성 식물 ‘카트’의 줄기를 씹어 먹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저자는 모가디슈에 체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남자들이 줄기를 씹는 이유를 깨달았다. 슬픔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도 씹고 싶어졌다.’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국가는 한국이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세 명을 만나 밥을 먹는다. 94년 1월,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식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할머니들이다.
“왜 죽으려고 하신 거예요?”
“내가 죽는 걸 일본인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어쩌면 이 책에서 한국인 독자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움켜쥐는 대목일 듯하다. ‘먹는 인간’은 일본에서는 94년 출간돼 대형 출판사 고단샤(講談社)가 주는 논픽션상을 받기도 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책과 길] 음식 통해 인간의 속살 들여다보다
입력 2017-03-17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