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보사가 홍보사?… 언론자유 무너지는 ‘상아탑’

입력 2017-03-16 05:00

대학 언론이 수난을 겪고 있다. 학교가 학내 언론사 편집권에 간섭, 학교에 비판적인 기사를 축소시키거나 강제로 신문을 수거해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던 대학언론 침탈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은 지난 13일 호외를 발행하고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1952년 창간 이후 처음이다. 편집 책임자인 전(前) 주간교수가 학교에 민감한 내용이 담긴 기사 비중을 축소토록한 데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신문에 따르면 전 주간교수는 지난해 10월 시흥캠퍼스 설립 반대 농성 기사의 비중을 줄일 것을 요구했다. 대신 개교 70주년 기념 기사를 크게 다루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아예 교내에서 신문을 수거해가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과학기술대 과기대신문사는 총학생회와 학교 측이 언론 자유와 배포권을 침해했다며 규탄 성명을 냈다. 과기대는 매년 기념가방에 교내 신문을 넣어 신입생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올해는 신문에 공대 전 비대위원장의 학생회비 횡령 기사가 실명으로 게재돼 있다는 이유로 총학생회와 학교가 신문사와 협의도 없이 신문을 뺐다.

앞서 한국외대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해 6월 학내 자치언론 ‘외대’가 보수 성향의 동문 언론인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싣자 학교 측이 교내에 비치된 교지를 모두 수거해가는 일이 있었다. 지난해 10월 청주대도 학교 비리를 규명하기 위해 청대신문 등이 모여 학생언론연대를 발족하자 청주대는 학교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오던 주간교수를 임명하지 않고 공석으로 뒀다.

대학 측은 교내 언론매체를 독립된 언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학교 기관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서울대 백지 발행 사태 이후 한 학교 관계자는 “예산이 학생처에서 나오기 때문에 대학신문은 학생 신문이 아닌 학교 신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청대신문의 한 기자는 “새로 임명된 주간교수가 ‘너희는 부속기관인데 왜 학교를 비난하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며 학교가 학보사를 학교 언론사가 아닌 학교 홍보사로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연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학교 측이 학보사가 언론이라는 개념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홍보지로만 보고 있는 것 같다”며 학보사는 사보가 아닌 언론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편집 최고책임자인 주간교수는 주로 학교 측이 임명한다. 주간교수는 편집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데, 주간교수의 성향과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주간교수가 최종적으로 기사를 검토하기 때문에 학생 기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 논란과 정유라 학사특혜 문제로 내홍을 겪었던 이화여대는 비교적 자유롭게 학교에 비판적인 기사들을 실을 수 있었다. 박보경 이대학보 편집국장은 “당시 쓰고 싶은 기사를 쓰지 못한 적은 없었다”며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있다기보다는 현재 주간교수를 맡고 있는 분이 특히 개입이 적은 편이라 가능했던 일 같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연세춘추의 한 기자는 “지금은 별 문제가 없지만 학생 기자와 학교가 대립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주간교수가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편집과정이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가 학내 언론에 간섭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종섭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학내 언론은 원칙적으로 학생 자치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학교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학생 기자에게도 객관성이나 공정성 등 언론인으로서의 책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