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행 朴정권 공동책임론에… 장고 끝 ‘선수’ 대신 ‘심판’ 택해

입력 2017-03-15 18:17 수정 2017-03-15 20:59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5일 오전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한 시민·학생들의 의거를 기리는 경남 창원의 국립3·15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황 권한대행은 오후엔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창원=이병주 기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결국 조기 대선의 ‘선수’ 대신 ‘심판’을 선택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박근혜정부 핵심 인사라는 현실적 한계와 국정 운영자로서의 책임감이다.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로 박근혜정부의 주요 축을 담당했던 황 권한대행은 헌정 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파면 사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권한대행 체제 이후 줄기차게 공언해온 ‘국정 운영 안정화’를 위해서라도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9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직후만 해도 황 권한대행의 출마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국무총리에 오른 후 대선 출마 질문이 수차례 이어졌으나 본인이 적극 부인하기도 했다. 황 권한대행은 2015년 9월 22일 총리 취임 100일 간담회, 이듬해 6월 16일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각각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 “지금 제 일 하기도 벅차다”며 출마 가능성을 일축했다. 권한대행 체제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도 출마 계획과 관련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총리실 내부에서도 출마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게 나오며 출마설이 고개를 들었다. 황 권한대행의 입장도 미묘하게 바뀌었다. 단호한 부정 대신 긍정도 부정도 않는 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출마설은 확산됐다. 유력 대선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낙마도 황 권한대행 출마 기대를 높였다. 범보수권 후보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황 권한대행이 결국 대선 레이스에 ‘선수’로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자유한국당의 구애도 불출마 결정 직전까지 계속됐다. 유재중 이완영 박찬우 의원 등 한국당 소속 의원 6명은 14일 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으로 찾아가 황 권한대행을 만났다. 이들은 황 권한대행에게 대선 출마를 간곡히 촉구했다. 또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황 권한대행에게 전화를 걸어 출마를 요청했다.

끈질긴 구애에도 불출마를 선택한 것은 박근혜정부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황 권한대행의 이력과 관계가 깊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2011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황 권한대행은 2013년 2월 박근혜정부 출범과 동시에 법무부 장관에 발탁되며 공직에 복귀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책임자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감찰을 지시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도 이끌어냈다.

정권과 코드를 맞췄다는 평가를 받은 황 권한대행은 2015년 6월에는 국무총리로 지명되며 승승장구했다. 총리 후보자들이 잇따라 낙마하면서 차선으로 선택됐고,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선 ‘문자 해고’ 파문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함께 박근혜정부 최장수 국무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황 권한대행이 출마한다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고스란히 황 권한대행을 향하게 된다.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정권의 적자’로 ‘포스트 박근혜’라는 비판을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8대 0 결정은 황 권한대행 입장에선 극복할 수 없는 치명타가 됐다.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정부의 정당성을 주장할 법률적 근거마저 완전히 상실됐기 때문이다. 당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본인이 밝힌 대로 대통령 궐위 상황에서 국정을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황 권한대행이 출마하면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를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황 권한대행이 져야 한다. 국정공백의 시작은 박 전 대통령이지만 이를 심화시킨 것은 황 권한대행이라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된다. 황 권한대행이 사드(THAAD) 배치, 북한 도발 등 그간 쏟아낸 말을 감안할 때 스스로 국정 불안의 원인이 되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10% 안팎이었던 지지율이 최근 들어 정체 상태라는 점과 출마 시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것 역시 부담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황 권한대행은 두드러기의 일종인 담마진으로 병역 면제를 받아 인사청문회 등에서 비판받은 바 있다.

글=김현길 이종선 기자 hgkim@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