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노숙자가 지하철에서 투신자살했다. 신문의 1단 기사로 처리된 그의 죽음에 현대사의 비극이 관통한다. 노숙자의 본명은 진태. 성은 모른다. 1951년생이지만, 1949년생 송달규라는 이름으로 산다. 그는 어찌하여 자신보다 2년 먼저 태어난 타인의 이름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가.
그는 외조부가 살던 남도의 작은 섬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좌익척결에 앞장섰던 서북청년단의 우두머리 ‘갈고리’로 짐작될 뿐.
청소년기, 출생의 비밀을 안 그는 가출해 광주의 한 세탁소에 몸을 의탁한다. 평온은 잠시. 베트남전 참전 후유증으로 10여년 고깃배를 타며 먼 바다를 떠돌았다. 그 사이 광주에선 군인들에 의해 시민들이 죽는 사건이 터졌다. 그를 자식처럼 돌봤던 세탁소 아저씨도 불운을 겪는다. 고엽제의 고통이 그즈음 찾아왔고 결국 그는 정신장애인 집단수용시설인 기도원 신세를 진다.
무려 25년을 보낸 기도원을 스스로 걸어 나온 건 어느 날 TV에서 본 뉴스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이어지는 세월호 반대집회. TV에서 그자의 얼굴을 본 것이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 80대 노인이 ‘갈고리’, 그러니까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직감한다. 지하철에 뛰어들던 그의 손에는 칼 한 자루가 쥐어 있었다고 CCTV는 증언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 그는 무엇을 향해 돌진했을까.
임철우(63·사진) 작가가 다섯 번째 소설집 ‘연대기, 괴물’(문학과지성사)을 냈다. 대표작 ‘아버지의 땅’(1984) 이후 그에게 붙은 수식어 ‘기억과 죽음에 관한 사유’가 이번 소설집에도 흐른다.
김형중 평론가는 임 작가를 한국 현대사의 가장 참혹한 사건들을 현재로 불러 오는 자, ‘기억의 발굴자’라고 칭한다. 표제작이 특히 그러한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사건 등 현대사 비극의 연대기다.
역사적 폭력이 개인의 삶을 망가뜨려가는 과정을 숨 막히도록 잔인하게 그린다. 악몽의 되새김질이야말로 후세대의 책무임을 말하는 작가는 ‘고통의 사제’에 비견되곤 한다.
‘흔적’ ‘간이역’ 등 다른 단편들은 역사라는 무거운 갑옷을 내려놓고 죽음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흔적’의 주인공 71세의 노인에겐 유독 불운이 이어진다. 외환위기로 사업이 망한 외동아들이 자살하고, 아내는 암으로 죽고, 이제 독거노인이 됐다. 쓸쓸하고 어두운 이야기다. 그게 우리가 마주해야 할 생의 또 다른 얼굴임을 작가는 매몰찬 어조로 이야기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타인 이름으로 살다 죽은 노숙자
입력 2017-03-17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