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올림머리는 죄가 없다

입력 2017-03-15 17:45

포마드를 발라 잘 빗어 넘긴 머리, 구김 없이 다림질된 양복, 맞춤한 노트(knot)와 딤플(dimple)이 들어간 넥타이, 다소 오만하게도 비춰지는 냉정한 표정과 절도 넘치는 걸음걸이, 세련된 제스처와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까지. 2014년 5월 왕이(63)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정상회담 의제 조율차 방한했을 때 외교부 청사에서 지켜본 모습이다. 왕이는 그렇게 패션과 외모로도 주요 2개국(G2) 외교장관으로서의 위상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돋보이는 용모 덕에 왕이는 SNS에서 15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스타 정치인이 됐다.

스타 정치인이라면 쥐스탱 트뤼도(45) 캐나다 총리도 빼놓을 수 없다. 잘 생긴 외모 덕에 가는 곳마다 ‘오빠부대’가 생겨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옷도 잘 입어 유명 패션 잡지 배너티페어와 남성 잡지 GQ 등이 ‘베스트 드레서’로 꼽기도 했다. 그의 훤칠한 용모가 캐나다의 국가이미지를 더 높여줬다는 평가가 많다.

패션으로 요즘 가장 두드러진 지도자는 테레사 메이(60) 영국 총리다.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바지나 스키니진을 즐기고, 허벅지가 드러날 정도의 짧은 치마, 어깨끈 없는 드레스 등 과감한 패션으로 눈길을 잡고 있다. 정상회담장에 새빨간 구두나 표범무늬 구두를 신고 나타나 온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패션 잡지 보그는 오는 4월 표지모델로 메이를 점찍어 놓았다. 새내기 지도자 메이가 국제무대에서 빠르고, 또 인상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개성 강한 패션이 큰 도움이 됐다.

프랑스 정치인들도 패션과 외모를 가꾸는 일에 적극적이다. 좌파 출신의 프랑수아 올랑드(62) 대통령은 통통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몸에 착 붙는 세련된 반코트를 자주 입고, 숱이 적은 머리를 가꾸려고 온 정성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머리 손질을 위해 대통령궁에 장관급 연봉인 1억5000만원을 지급하고 전담 이발사를 둬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프랑스의 얼굴’인 그가 그런 노력을 기울인 걸 좋게 평가한 이들도 많다. 숨진 뒤 샤넬, 에르메스 등 최고급 디자이너 양복 60벌이 경매에 부쳐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도 프랑스의 패션 자존심을 드높인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반면 우리나라 지도자나 정치인들은 화려한 패션을 기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용모를 잘 가꾸는 일조차 쉬쉬 한다. 본인들이나 배우자들의 명품 옷이나 가방, 시계가 자주 비난의 대상이 돼 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탈리아 명품 원단을 쓴 양복을 입었다고 눈총을 받자 양복을 벗을 때 브랜드가 안 드러나게 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마냥 소박한 게 좋다는 단순한 생각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4000원짜리 헝겊지갑이나 볼품없는 핸드백을 들고 다니게 만들었고, 그런 게 훌륭했다고 포장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와 ‘피부시술’ 논란이 휩쓸고 간 지금은 어떨까.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이 이전보다 더 외모나 패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풍토는 국제무대에서 더욱 볼품없고, 매력 없는 한국 지도자, 정치인, 각료 등으로 각인시킬 것이다.

말이나 콘텐츠만 중요한 시대는 끝났다. 특히 국제무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말보다 패션이 더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또 국격을 더 드높여주기도 한다. 반대로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의 볼품없는 용모가 어렵게 쌓아 올린 국가이미지를 훼손할 때가 많다. 때문에 차기 대통령이나 정치인들, 장·차관들이 국제무대에 나설 때만이라도 다들 멋쟁이가 되길 바란다. 제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게 잘못일 뿐 ‘올림머리’는 죄가 없다.

손병호 국제부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