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김치가 한국인의 ‘사스’ 면역력을 키워줬다고?

입력 2017-03-17 00:03

부부관계가 안 좋다고? 원앙새 고기로 국을 끓여 드시라. 이 고깃국을 먹으면 부부 사이가 금세 좋아질 것이다.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가? 흰 개의 쓸개와 말린 칡, 계피를 준비한 뒤 이들 재료를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라. 이 처방을 따른다면 당신은 투명인간이 돼 세상을 누빌 수 있다.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떠받드는 의학과 식품학 분야의 고전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누군가 고서(古書)를 근거로 어떤 음식이 좋다고 하면 맹목적으로 그 음식을 찾는데, 동의보감 같은 책에도 잘못된 내용은 적지 않다. TV에서 다루는 먹거리 정보도 마찬가지다. TV를 틀면 온갖 프로그램에서 교수 의사 셰프 등이 출연해 이 음식은 위험하다, 저 음식은 몸에 좋다는 주장을 늘어놓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수두룩하다.

‘솔직한 식품’은 몇몇 음식에 대한 맹신을 꼬집고, 일부 음식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책이다. 저자는 부산 신라대에서 식품공학을 가르치고, 이 대학 해양극한미생물연구소 소장인 과학자다. 책의 목차만 살펴도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다. ‘전통음식은 몸에 좋다고?’ ‘발효식품은 천사가 아니다’ ‘천연은 안전하지 않다’….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신간일 듯하다.

누구나 알다시피 세상의 식품 정보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이들 정보에는 농어민 유통업자 외식업체 정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본래의 데이터보다 훨씬 더 많은 메타데이터(해석)가 생산되고 유포’되는 게 식품 시장의 특징이다.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령 김치를 떠올려보자. 2002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SARS)가 아시아를 휩쓸었고, 7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감염자가 한 명밖에 없었다. 각종 매체나 일부 학자들은 그 이유를 김치에서 찾았다. 김치가 한국인의 면역력을 키워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김치를 먹지 않는 일본에서도 사스 감염자는 거의 없었다. 김치랑 사스는 별 관계가 없었던 셈이다.

저자가 주문하는 건 과학자의 역할이다. 과학자가 음식과 대중을 잇는 지점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솔직하고 다각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과학자는 그러한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에 상대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다. …과학자부터 솔직하고 올바른 이야기를 해나가야 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시도로서 세상에 나왔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