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박근혜, 대통령 되면 나라가 최순실 밥상”

입력 2017-03-17 00:02
최태민의 가족들이 1974년 여름 북한산성에 물놀이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최순실 조용래 최순천(최순실 동생) 임선이(앞줄 왼쪽부터)의 모습이 담겨 있다.모던아카이브 제공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 전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의 개인적 인연에서 움텄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하다지만 박 전 대통령이 최태민에 혹하지 않았다면, 이후라도 최태민 일가와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했다면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불행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또 하나의 가족’은 참회록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와 그 아들의 참회다. 저자 조용래는 조순제의 아들로 국정농단 주역 최순실의 의붓조카다. 저자는 오랫동안 박 전 대통령을 위해 일했던 아버지와 할머니(임선이) 지시에 따라 박 전 대통령 집사노릇을 했던 어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내용을 재구성했다.

이 책은 저자가 임선이의 첫 결혼(1940년)을 시작으로 2007년 아버지 임종까지 68년의 기록을 담은 최태민 일가의 가족사다. 박 전 대통령과 최태민의 인연 등 이미 공개돼 널리 알려진 얘기도 있지만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적잖다. 검찰과 특검이 최순실을 기소하면서 밝힌 ‘경제적 공동체’ 개념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도 들어있다.

“박정희 사후 조순제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박정희가 남긴 돈을 최태민 일가 쪽으로 빼내는데 관여한 일이다. 금덩어리, 달러, 채권뭉치, 외국은행 비밀계좌에서도 돈이 나왔다. 박근혜 입장에서는 부정하고 비밀스런 돈이어서 국가에 헌납할 수 없었다. 커도 너무 큰 단위의 돈이라 크게 당황했고 어쩔 수 없이 최태민에 의지했다.”

10·26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감시가 심해지자 박 전 대통령의 최태민 의존도는 더 심해졌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고 믿었고, 그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최태민에게 삶의 모든 부분을 의지했다. 마시는 물 한 모금, 약 한 봉지까지 최태민이 직접 챙겼다.” 박 전 대통령과 최태민은 서로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교주였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박 전 대통령이 공적 라인을 무시하면서까지 민간인에 불과한 최순실을 그토록 신뢰했던 이유다.

최순실과 남편 정윤회가 인연을 맺게 된 에피소드도 있다. 최순실은 특별대우 받는 걸 좋아해 지방공항에 도착하면 검색 없이 통과하도록 조순제에게 부탁했고, 외국에 나갈 때도 하도 성가시게 굴어 해외여행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을 소개받아 연결해줬는데 그가 정윤회였다는 것이다.

조순제 역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의든 타의든 박근혜·최태민 커넥션에 일조했고, 그 혜택을 누렸다. 조순제는 박 전 대통령을 위해 일했는데도 인사를 받기는커녕 그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자신을 모른다고 하자 진실을 폭로했지만 끝내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온 나라가 순실이의 밥상이 되고 박근혜는 순실이의 젓가락이 될 것이다.” 2007년 12월 사망한 조순제가 남겼다는 말이다. 다가올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했다. 저자는 지난해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된 후 최태민 일가를 둘러싼 진실을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박영수 특검에서도 관련 내용을 증언했다.

“보통사람이 절대로 박근혜가 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평범한 사람도 기회가 있다면 최순실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이흥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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