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꿰뚫는 핵심어는 특권과 반칙이다.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씨는 불법적 힘을 휘두르며 국정을 농단했다. 박 전 대통령 또한 최씨의 전횡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탄핵됐다. 이제 형사피의자로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권력을 위임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에게 심판을 내린 것은 촛불민심이었다. 촛불은 이 땅에서 정의가 훼손된데 상처 입은 국민들의 분노였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엄격한 법과 원칙을 늘 강조하면서도 자신만은 항상 예외로 여기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한 항거의 표시였던 것이다. 검찰과 특검 수사에서 변칙과 편법을 통한 국정문란 사례가 밝혀졌음에도 끝까지 부정한다거나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도 불복하는 듯한 장면에서 대통령으로서의 공공성과 정의로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거의 유일한 국가다. 그러나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될 만큼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민주화 정도는 이에 발맞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절차로서의 법치는 이뤄졌지만 실질적 법치와의 괴리는 존재했다. 법 정신의 정수(精髓)인 정의의 가치는 국민총화와 경제발전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주 힘을 잃었다. 때로 권력자에 의해 정의가 희화화되기도 했다. 1980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정권의 국정지표는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불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일당이 정의를 주창하는 역설의 시대였다.
국민들은 늘 정의에 목말라했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은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민일보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지난 13일 개최한 국제포럼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일보가 조사전문 업체인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교회와 사회 개혁을 위한 성도 및 목회자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에 대한 대답으로 성도의 41.2%가 ‘투명·공정성 회복’을 꼽았다. 시급히 해결돼야 할 사안인 ‘물가안정·경제성장’ 응답률 21.1%를 압도할 만큼 정의를 갈구하는 기대감은 높았다.
경제정의 실천도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등의 격차는 시장의 힘만으로 개선되기에는 골이 너무 깊어졌다. 성장의 논리 앞에 분배의 목소리는 위축됐다. 경제정의를 대변하는 경제민주화가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 당위가 돼야 하는 까닭이다. 정의의 또 다른 이름은 공정과 공평이다. 불공정과 불공평을 개선하려는 것이 반드시 도덕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정의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지론이다. 정의학 연구의 대가인 존 롤스는 정의의 요체인 공정은 최소 수혜자에 대한 최우선 배려를 통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는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내면의 이기심이 극대화되면서 공동선의 가치는 점차 소멸된다. 갈등과 반목이 확산돼 사회적 비용은 증가한다. 지금부터라도 무너진 사회정의를 세우는 데 국민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정의가 일상의 당연한 덕목으로 인식되는 공동체가 될 때 구성원 간 유대는 공고해지고 기업과 사회, 정부의 신뢰도는 높아진다. 그렇게 돼야 삶의 궁극적 목표인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사설] 반칙 없는 정의로운 나라 만들자
입력 2017-03-15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