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남도의 봄맛 품은 보석같은 다도해

입력 2017-03-15 20:47
미술관을 두고 마을 전체를 ‘예술의 섬’으로 가꾸고 있는 연홍도. 지붕은 빨강과 초록, 파란색으로 단장됐고 마을의 벽은 그림으로 채워졌다. 그곳에서 쟁기질하는 농부도 그림 속의 풍경처럼 보인다.
연홍도 선착장 방파제에 설치된 조형물
오천해변의 공룡알 같은 몽돌
고흥우주천문과학관을 찾은 여행객이 전망대에서 다도해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은 자연이 빚어낸 밤하늘 별빛과 녹동항·거금대교 등 삶의 현장이 만들어낸 야경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전남 고흥은 흔히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린다. 우뚝 솟은 산은 물론 바다 위에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 있는 230여개 섬들의 기암절벽 등 천혜의 자연환경이 마치 예술작품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아름다워서다. 이런 고흥에 진짜 지붕 없는 미술관이 들어섰다.

미술관 품은 섬 속의 섬, ‘연홍도’

섬의 형상이 넓은(洪) 바다에 떠 있는 연(鳶)과 같이 보여 얻은 이름이다. 말처럼 생겼다 해서 마도(馬島)로도 불렸다. 원래 돌산현에 속했으나 1895년(고종 32년) 행정구역개편으로 고흥군 금산면에 편입되면서 연홍도로 개칭됐다.

해안선을 모두 이어 붙여도 길이가 4㎞에 불과한 ‘손바닥만 한’ 섬이다. 주민은 51가구에 82명. 소록대교와 거금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고흥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거금도로 간 뒤 다시 신양선착장으로 이동해 배를 타야 했던 ‘섬 속의 섬’이었다.

이 연홍도가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섬 속에 자그마한 미술관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섬 전체가 ‘예술의 섬’이란 주제로 하나의 미술관으로 가꿔지고 있다. 연홍도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방파제에 세워놓은 조형물이 눈길을 잡아끈다. 소라껍데기 조형물 두 개에 이어 바다를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바람개비를 돌리며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원색의 철제 구조물에 담겨 있다.

슬레이트와 기와·함석지붕은 빨강과 초록, 파란색으로 산뜻하게 단장됐고 벽화가 가득하다. 둘레길 곳곳에 세워진 표지판도 예술품이나 다름없다. 선착장 인근 집은 사진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주민들이 기증한 추억의 사진 400여장이 빼곡히 채우고 있다. 해안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을 걸으며 자연풍광을 즐기다 보면 미술작품들이 곳곳에서 다가선다.

1998년 폐교된 금산초등학교 연홍분교장에서 2006년 자그마한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연홍미술관은 입구에서부터 아기자기한 미술품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선호남 관장이 폐교를 구입해 11년째 운영 중이다.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미술관은 한때 폐허나 다름없었지만 현재 예술의 옷을 다시 입히는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폐교 운동장은 소박한 야생화 꽃밭의 미술관 정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방을 새로 짓고 내부 조명시설도 교체했다. 미술관은 4월 7일 ‘섬 여는 날’ 행사 때 재개관한다.

미술관 앞바다 위에도 근사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옥빛 바닷속에서 은빛 스테인리스스틸 물고기가 등을 드러내고 있다. 갯바위에 흉물처럼 남아있는 김 가공공장 잔해에다 프랑스 작가가 그려놓은 ‘물방울무늬’가 강렬하게 와 닿는다. 산책로에는 사랑을 더해주는 조형물이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 너머로 멀리 완도에 속한 섬 금당도의 우람한 석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보석 같은 다도해

고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봄 바다 정취다. 거금도 일주도로를 돌고 고흥반도 해안도로를 지나면 다도해의 봄 향기가 가슴 깊이 스며든다.

소록도 바로 밑에 위치한 거금도는 2011년 거금대교로 이어졌다. 고흥의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조선시대 도양목장에 속한 방목지의 하나로 ‘절이도’라 했으며 일설에는 큰 금맥이 있어 ‘거금도’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팝나무, 참식나무, 육박나무 등 난대수종의 보고(寶庫)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수평선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오천몽돌해변, 갯바위 낚시터 등 해안을 따라 볼거리가 이어진다. 오천몽돌해변에는 모래 대신 커다란 몽돌바위부터 아기 고사리 손 마냥 아기자기한 몽돌이 가득하다. 올망졸망 섬을 품고 있는 옥빛 바다는 은빛 물결을 풀어놓고 억만년 동안 드나든 파도는 공룡알 같이 둥글둥글 몽돌을 빚어냈다.

고흥반도에서는 영남면 남열에서 우천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압권이다. 길을 따라 다도해의 봄 바다가 주르륵 펼쳐지고 인근에 남열해돋이해변과 우주발사전망대, 용바위, 사자바위 등 명소가 몰려있다. 우주발사대처럼 생긴 고흥우주발사전망대는 지하1층, 지상7층 건물로 2013년 1월 1일 개관했다. 나로우주센터와 해상 17㎞ 직선거리에 위치해 나로우주센터 우주발사체 장면과 다도해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남면 우천리 용암마을 해변에 위치해 있는 용바위는 반석과 암벽 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먼 옛날 남해의 해룡이 하늘로 승천할 때 이곳 암벽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단체나 가족단위 나들이 장소로 좋다.

청정 바다에서 건져 올린 남도의 봄맛

고흥에는 ‘남도의 봄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싱싱한 먹거리가 가득하다. 고흥 앞바다에서 잡히는 붕장어는 쫄깃쫄깃한 데다 감칠 맛이 일품이다.

고흥낙지는 몸에 꽃무늬가 있어 ‘꽃낙지’라고도 한다. 국물이 시원한 낙지연포탕과 낙지를 살짝 익혀 양념해 볶아 먹는 연포구이는 어린아이나 여자들이 즐겨 찾는 메뉴이다.

낙지 한 마리를 통째로 끓여내는 ‘낙지 팥죽’은 맛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삼치도 회로 먹는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고추냉이와 곁들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은 김에 싸서 돌돌 말아 먹는다.

봄철 나로도에는 산란을 위해 난류를 타고 회유해온 서대가 많이 잡힌다. 서대회는 식초에 매콤한 양념을 해서 무치는데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여행메모

신양선착장에서 연홍도까지 배로 5분… 볼거리·체험거리 다양


전남 고흥의 연홍도는 거금도에서 들어갈 수 있다. 완주순천고속도로 동순천나들목에서 빠져 17번 국도를 타고 여수·광양항 방면으로 가다 신대교차로에서 목포 방면 남해고속도로로 올라선다. 이후 고흥나들목에서 나와 고흥 방면으로 우회전해 15번 국도로 갈아탄다. KTX를 타면 순천역까지 2시간30∼50분 소요된다. 순천역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면 고흥읍내까지 30여분 걸린다.

고흥읍내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소록대교를 지나 거금대교를 건너면 거금도다. 금산면사무소를 지나 중촌삼거리에서 배천·신양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연홍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신양선착장에 닿는다.

신양선착장에서 하루 일곱 번 연홍도 가는 배가 뜬다. 정원 10여명의 작은 통통배가 오전 7시, 8시, 9시 50분, 낮 12시 30분, 오후 2시 30분, 4시 30분, 5시 30분 출발한다. 뱃삯은 3000원(소인 1500원). 600여m 떨어져 있어 5분이 채 안 걸린다. 거금도와 연홍도를 연결한다. 면적 0.77㎢, 해안선 길이 4㎞로 천천히 걸어서 두세 시간이면 족하다.

고흥에는 팔영산 편백나무숲, 해창만, 중산일몰, 남열해돋이해변, 형제섬, 시호도 원시체험 등 볼거리·체험거리가 넘쳐난다. 외국인 선수들을 박치기 한방에 쓰러뜨리던 프로레슬링의 전설 김일의 고향인 거금도에 김일체육관이 있다. 슬픔과 애환이 서려 있는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도 빼놓지 말자. 직경 800㎜ 반사 망원경을 갖춘 고흥우주천문과학관에서 보는 일몰도 근사하다.

고흥=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