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보스는 악한 존재만은 아니죠”…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마녀 카라보스 역 이재우

입력 2017-03-15 18:16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재우는 마르시아 하이데가 안무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마녀 카라보스 역을 맡았다. 그는 14일 “카라보스가 입체적으로 표현되면서 원작보다 더 흥미로워졌다”고 말했다. 서영희 기자
지난해 초연된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한 장면.
국립발레단은 지난해 마르시아 하이데(80)가 안무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이하 ‘잠미녀’)를 무대에 올렸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친정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간판 무용수이자 예술감독이었던 하이데는 1987년 ‘잠미녀’를 통해 안무가로도 재능을 뽐냈다.

‘잠미녀’는 러시아발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차이콥스키가 음악을 작곡한 발레 3부작으로 꼽힌다. 1890년 초연이후 수많은 안무가가 이 작품을 재해석했는데 하이데는 마녀 카라보스를 강조해 선악을 강렬하게 대비시킨 것이 특징이다.

하이데 버전에서는 마녀 카라보스를 여자가 아닌 남자 무용수 가 맡는다. 카라보스는 5m 정도 되는 검은 망토를 입고 여러 시종들을 거느리면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풍긴다. 역대 다른 버전과 비교해 춤이 매우 많아 사실상의 주인공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내한한 하이데는 수석무용수 이재우(27)를 보자마자 카라보스 역으로 바로 낙점했다. 195㎝의 장신이면서도 빠르고 유연한 몸놀림이 카라보스에 적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재우는 올해 재공연에선 카라보스와 함께 오로라 공주를 깨우는 데지레 왕자 역을 번갈아가며 연기할 예정이다.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재우는 “하이데 선생님의 ‘잠미녀’는 전형적인 클래식발레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매우 신선하다”면서 “동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카라보스가 입체적으로 표현되면서 영화 못지않게 흥미로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초연에선 카라보스의 역할을 익히는데 급급했지만 올해 재공연에선 한층 여유가 생기면서 왕자 역도 맡게 됐다”고 덧붙였다.

2009년 연수단원으로 국립발레단과 인연을 맺은 이재우는 2011년 준단원일 때 ‘호두까기 인형’ 왕자 역으로 주역 데뷔했다.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2014년 12월 수석무용수로 빠르게 승급했다. 그는 “수석무용수를 중심으로 캐스팅이나 리허설이 이뤄지는 만큼 예전보다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 수월해졌다”면서 “동시에 수석무용수로서 책임감이 얼마나 막중한지 알기 때문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한다”고 피력했다.

그가 해석하는 카라보스는 악역이지만 사악하다기보다는 심통을 부리는 모습이다. 그는 “카라보스는 단순하게 악한 존재가 아니다. 오로라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것을 구실로 사람들을 겁주는 장난을 하는 것이다. 라일락 요정과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높낮이가 있는 카라보스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카라보스의 모습 안에 장난기를 담아서 연기하려고 한다. 그래서 동작도 한층 크게 한다”고 설명했다. 데지레 왕자 역에 대해선 “왕자의 춤은 매우 클래식하다. 카라보스와 달리 동작이 정적이지만 정교해야 하는 만큼 몸을 더 긴장시켜야 한다. 그래서 종아리에 쥐가 날 것 같다”고 웃었다.

이 작품에서 그가 가장 신경쓰는 것은 의외로 카라보스의 긴 치마와 망토. 자칫 치마를 밟아 미끄러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리허설 도중 치마에 걸려서 넘어졌다. 짧으면 움직임이 좀 편하겠지만 그러면 멋이 없다”고 말했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