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경유착 끊고 건강한 상생관계 만들자

입력 2017-03-14 18:30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10 민주항쟁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민주주의와 법치의 초석을 놓았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7년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은 관행으로 묵인되던 과거와 결별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하고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해 청산해야 할 적폐(積弊) 중 하나가 정치권력과 자본의 검은 유착을 끊는 것이다.

성장이 최우선 목표였던 개발연대 시대에나 있을 법한 정경유착 관행이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는 지금까지 근절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모금비리 청문회에 섰던 재벌 총수들의 2, 3세들이 30년이 지나 같은 자리에 섰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8대 그룹 총수들이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이런 관행은 근절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말뿐이었다.

정경유착의 폐해는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국격을 추락시키는 것은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켜 직간접적인 피해를 준다. 재벌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다니고 출국금지를 당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못하는 등 경영 차질도 막대하다. 더 큰 문제는 공정한 시장 룰을 깨뜨려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기업 생태계를 기울게 한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의 설립, 최순실의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대통령의 행위가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적시했다. 맞는 말이다. 기업들은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사실상 최순실 소유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했다. 그렇게 하고도 재단의 사업 추진이나 자금집행, 업무지시 등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 인사청탁과 납품사 선정, 광고수주 민원 등 최순실 일개 사인을 위한 박 전 대통령의 수많은 요구들을 거절하지 못했다. 검찰 판단대로 대통령 강요에 의한 것인지, 특검이 본 것처럼 이권을 얻는 대가였는지는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업들은 투자와 일자리로 보답하며 건강한 상생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얼마 전 경제단체들은 법보다 수준 높은 윤리경영 실천과 정치적 중립 의무 준수를 결의했다. 삼성전자는 모든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 운영의 투명성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기업들이 투명·정도 경영을 한다면 정권이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를 무기로 겁박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정도 경영을 위해선 재벌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고 주주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들 모두 이사회가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다. 이사회가 제 기능을 복원해 경영진이 기업과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주주 손해배상제도를 활성화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영진에 대해선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치권도 바뀌어야 한다. 기업들에 손 벌리고 이권에 개입하는 구태를 버리지 않으면 부패 국가란 오명을 벗지 못한다. 그래도 악습을 반복한다면 법으로 엄벌하면 된다.

기업들은 아시아 변방의 가난한 나라를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일으켜 세우고 국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일등공신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엔 반기업정서가 심하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는 것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선진국으로 나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