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나미] 이젠 모두 서로를 칭찬할 시간

입력 2017-03-14 18:32

우리 모두 다 힘들었다. 그리고 애들 많이 썼다. 촛불을 들었건, 태극기를 들었건, 양쪽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지켜만 보았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은 하나였다. 언론에서 충격적인 진실을 터뜨려 주기 이전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각한 문제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은 것들이 밝혀졌지만 끝까지 죄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헌재가 파면을 결정할 때까지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과격한 말이나, 돈키호테같이 비합리적인 행동도 있었고,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는 시간에는 흥분한 시위대 중 사망사고도 있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는데도 심각한 폭력사고가 없었다는 것은 세계사에서 찾기 힘든 굉장한 쾌거다.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할 만하다. 쉬지 않고 수사에 매진한 특검팀이나 수도승처럼 살면서 오로지 법리에만 철저하게 충실했던 헌법 재판관들에게는 특히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박 전 대통령에게도 고마운 부분이 있다. 욱하는 마음으로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아 주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서, 보수라 자칭하는 몇몇 정객들과 권력 주변의 민낯과 수준을 가감 없이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모든 것이 다 내 탓이라고 하며 비극적인 영웅이 된 채 사건이 덮어졌다면 국민들은 안쓰러운 마음에 제2의 박근혜에게 다시 정권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적어졌다. 아무래도 박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사이비 보수들을 고립시키고 초토화시키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간 트로이의 목마인 것 같다. 그러니 결론적으로는 정치 개혁에 큰 도움을 준 셈이다.

물론 최근 경제가 침체되고 사드 배치 결정 이후 관광업계는 특히 아우성이지만 꼭 탄핵정국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용도 과정의 민주적 절차도 없이 공허한 독재 권력의 방식만 답습한 누적된 실정(失政)의 결과물일 뿐이다. 이제 산뜻하게 집단의 수장을 바꾸고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슬러 새롭게 시작하면 될 일이다. 임진왜란 때 백성들을 버리고 살던 집과 곳간마저 다 불 지르고 왕과 양반들이 도망쳤어도, 6·25전쟁 중 가짜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면서 대통령과 각료들이 몰래 서울을 빠져 나갔어도, 이 땅을 지켜서 잿더미에서 다시 영광스러운 역사를 쓴 국민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상처받은 국민들에 대한 자기반성과 위로는커녕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말로, 또 새롭게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박 전 대통령의 말로 또다시 과격 선동 부대가 광장으로 뛰쳐나올 수는 있을까봐 좀 걱정이 되긴 한다. 헌재와 국법을 거부하며 법치를 전복시키려 하는 가짜 보수 세력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다수의 국민들은 촛불을 잠시 꺼 두고 뒤로 물러서 관망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직접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줄 만큼 보여주었으니 법과 시스템으로 전 대통령의 잘잘못을 가려도 충분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며 주말에는 또 광장에 나오는 힘든 겨울을 보냈다. 식당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농장에서, 망망한 배에서… 불평 없이 주어진 몫을 끝까지 해내는 이 땅의 일꾼들이 쉬고 자야 할 시간에 거리로 뛰쳐나왔던 그 에너지를 이제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헌재가 8대 0으로 대통령을 파면하고, 경찰과 언론은 과격한 시위대에게 두드려 맞아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지혜롭게 대처했다. 우리 사회가 몇몇 어리석은 망상 환자들 때문에 망가질 만큼 허술한 나라는 아니라는 증거다. 전 세계에서 이만큼 시민들이 성숙하게 자기의 정치적 표현을 하는 나라가 있겠는가. 대단하고 멋진 국민들이다. 이젠 허수아비 같은 과거에 대한 집착과, 대상 없는 무의미한 증오를 내려놓고, 생각이 좀 달라도 진심어린 덕담을 나누고 힘을 모을 때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