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색 립스틱이 더 어울릴까, 핑크색 립스틱이 더 어울릴까?’ ‘실버가 어울릴까, 골드가 어울릴까?’ 그건 ‘앞머리를 자르는 게 나을까, 기르는 게 나을까’와 더불어 어떤 선택을 해도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보이게 되는, 그런 질문들이었다. 그러던 참에 퍼스널컬러 진단이라는 것을 받게 됐다. ‘퍼스널’ 같은 단어가 붙으면 내 지갑은 경계심이 좀 약해지곤 했는데, 게다가 색채 진단이라니 호기심이 솟았다. 비슷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소설가 Y가 합류했다.
화장을 지운 두 명의 여자가 흰 벽 앞에 앉아 있고, 그 민낯 위아래로 다양한 색의 천 조각이 오가기를 한참. 내가 깊고 진한 컬러가 어울리는 가을-웜(warm)-딥(deep) 톤이라면 Y는 하늘하늘하고 가벼운 컬러가 어울리는 여름-쿨(cool)-라이트(light) 톤이었다. 핑크를 좋아하던 나는 오렌지가 더 어울린다는 결과를, 오렌지를 좋아하던 Y는 핑크가 더 어울린다는 결과를 받았다. 가방 속 립 제품을 서로 교환해야 할 판이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컬러표도 받았는데, 확실히 나는 가을에, Y는 여름에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컬러표가 생각보다 유연해서 어느 유형이라도 아주 못 가질 컬러는 없다는 거였다. 핑크에도 무수히 많은 핑크가, 오렌지에도 무수히 많은 오렌지가 있다. 다만 명도와 채도, 톤의 차이가 있을 뿐. 그래서 모든 유형의 컬러를 쭉 늘어놓고 보면 사계절과 간절기까지 포함한 한 세계로 연결되는 걸 느낄 수 있다. 혼자 뚝 떨어진 컬러는 없는 것이고, 모든 컬러는 계절을 타며 조금씩 익어간다. 어찌 보면 퍼스널컬러는 누군가의 선택을 제한하려는 게 아니라 경계와 경계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더 세심하게 보도록 돕는 장치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티타임을 하러 가면 Y가 이렇게 말한다. “가을 딥 웜 톤의 케이크로 골라봤어요.” 또는 “오늘은 여름 쿨 라이트 톤 케이크를 먹을까요?” 케이크뿐이랴. 간판과 난간과 보도블록까지 미묘한 색감을 읽다보면 눈이 심심할 틈이 없다.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퍼스널컬러
입력 2017-03-14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