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15일] 애통함이 있습니까

입력 2017-03-15 00:05

찬송 : ‘내 주의 나라와’ 208장(통 24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느헤미야 1장 1∼11절


말씀 : 본문을 보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울면서 금식합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제국의 고위관리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역만리 떨어진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고 울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성이 무너진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기에 이렇게 애통해 하고 있단 말입니까.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기에 강제로 이주 당했던 유대 이민자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나고 자랐지만 관심은 유대민족의 회복과 영적 부흥에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술 관원은 왕이 가장 총애하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직책이었습니다. 그런 대제국의 고위관리로 지냈다면 관심을 가질만한 다른 일들이 많았을 텐데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만 집중 했습니다. 누구보다 예루살렘이 잘되기를 바랐습니다. 몰락한 유대 땅이 하나님이 다시 임재하는 거룩한 땅으로 회복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들려온 소식은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도 곤경에 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6∼7절에 보면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자기 민족의 죄를 곧 자기의 죄로 여겼습니다.

만일 오늘 느헤미야가 살았다면 교회를 바라보면서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슬피 울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면서 교회를 쉽게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물론 교회가 잘못하는 일에 대해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조롱에서 나오는 비판이 아니라 애정을 가진 비판이어야 합니다. 초기 기독교 교부인 키프리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없다.” 교회가 곧 신자들의 어머니라는 말입니다.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우리 또한 교회를 통해 영적 양식을 공급받고 자랍니다. 어머니가 잘못할 때 손가락질하면서 조롱할 불효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세상 앞에 조롱거리가 될 때에 가슴을 찢으며 애통해 하는 게 자식입니다.

느헤미야는 광활한 대제국의 고위관리였지만 그의 관심은 더 높은 자리, 안락한 삶이 아니라 황폐한 자신의 고국에 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금 유대 땅 안에 부흥이 일어나도록 기도했습니다. 왜 오늘날 이 땅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조국교회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고 애통해 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처박히고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입니다. 이에 대해 분노하면서 다시금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조국교회의 죄와 고통을 곧 나의 죄와 고통으로 여기고 다시금 이 땅에 부흥과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인 교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조롱받는 조국교회를 바라보며 애통의 마음으로 기도하오니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한성훈 목사(수원 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