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스페셜/정치탐구] 장미대선 가시밭길
입력 2017-03-14 21:23
대한민국 대통령은 현재 궐위(闕位) 상태다. 오는 5월 예상되는 19대 대통령 선거는 빈자리를 채우는 ‘보궐(補闕)’ 선거가 된다. 헌정사상 처음 시행되는 대통령 보궐선거다.
하지만 이런 ‘임시’ 선거가 영구적으로 가져오는 변화도 있다. 통상 대선은 연말에 치러졌지만 2022년 이후로는 2월 말 또는 3월 초에 치르게 된다.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선거를 임기 만료 70일 이전으로부터 다가오는 첫 번째 수요일에 치르게 하고 있다. 19대 대선이 5월 초에 치러진다면 20대 대선은 개헌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입춘(立春) 대선’이 된다. 지금까지는 추석이 대선 민심의 용광로로 여겨졌지만 앞으론 불과 대선 한 달 전인 설이 그 자리를 대체할 전망이다.
19대 대선이 가져오는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선이 7개월이나 앞당겨지는 만큼 예년과는 다른 풍경이 즐비하다. 당장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취임식도 못 볼 가능성이 있다.
사라진 대선 ‘깜짝 스타’
역대 대선은 대부분 견고한 양당 대결구도로 치러졌다. 하지만 간혹 이를 깬 ‘깜짝 스타’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대선을 앞두고 제3지대에서 독자 출마했지만 역부족을 절감했다. 유일하게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 사람은 ‘새 정치’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정도다.
역대 대선에서 가장 인상적인 깜짝 스타는 ‘소떼 방북’의 주인공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그는 1992년 1월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2월 대표에 취임했다. 3월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12월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초고속 정치행보였다.
정 명예회장은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 민주당 김대중 후보 등과 대선에서 맞붙었다. ‘반값 아파트’와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경부고속도로 복층화 같은 공약들을 내걸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16% 득표로 3위에 그친 뒤 이듬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의 아들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 낳은 대선 스타였다. 월드컵 선전은 월드컵 조직위원장이었던 그를 16대 대선 후보로 불러냈다. 그해 11월 ‘국민통합21’을 서둘러 창당한 뒤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뤘다. 대선 전날인 12월 18일 지지를 전격 철회했지만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2014년 권토중래를 노리고 의원직까지 버리며 서울시장에 도전했지만 박원순 시장에게 패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현 한솔섬유 사장)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경제 역량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시민사회 단체의 지지 속에 창조한국당을 창당해 대선 주자로 나섰다. 하지만 그 역시 5.8% 득표율로 4위에 그쳤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런 깜짝 스타를 보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조기 대선 탓에 정치 신입생이 두각을 나타낼 시간이 없다. 다당제가 구축되면서 새로운 정치영역 확보도 쉽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야권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다. 신예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야권 고위 관계자는 14일 “깜짝 스타들은 새 정치 기대주라는 평가도 있지만 외부 인기만으로 정치권을 흔들며 정당정치를 망가뜨린 주범이라는 비판도 있다”고 평가했다.
인수위가 없다보니…
통상 대선은 12월에 열리지만 대통령 취임은 이듬해 2월에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개월간 정권 준비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 차기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인’으로 불린다. 하지만 대통령 궐위 시에는 선거 다음날 바로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렇다보니 꼬이는 문제가 많다.
당장 장관을 인선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마치는 데만 수개월이 소요된다. 만약 낙마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시간이 배로 늘어난다. 그렇다고 전 정부 장관들을 마냥 ‘빌려’ 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구상이 ‘차관 정치’다.
통상적으로 각 부처 차관들은 해당 부처의 공무원들이 승진, 임명된다. 하지만 이번엔 당이나 캠프에서 추천한 인사들이 먼저 차관에 부임할 수도 있다. 장관 임명까지 시일이 걸리는 만큼 일단 당선인의 소신에 정통한 인사들이 차관으로 들어가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부 승진’한 차관들 역시 정부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야 한다.
공식 취임식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다. 외국 정상을 비롯한 외빈을 초청해야 하지만 일정을 조율할 시간이 촉박하다. 누가 당선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미리 캠프별로 준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차기 정부는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 이어진 5개월간 국정 공백을 만회해야 하는 비상상황에서 업무를 시작한다. 외교안보 상황은 엄중하고 경제는 가계부채라는 폭탄을 안고 있다. 한 야권 대선 주자 캠프 관계자는 “차기 정부는 김대중정부가 외환위기 직후 취임한 것과 비슷한 상황에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면서 “취임식을 미루거나 아예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각 대선 주자들이 ‘정당 중심’의 대선을 강조하는 것도 조기 대선의 영향을 받았다. 우선 각종 정책 공약을 완성하기에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집권하더라도 여소야대 국회에선 정당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과거 어느 때보다 정당의 정책 역량이 대선 주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각 정당이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을 추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야권통합·정계개편 가능할까
이번 대선에서도 예외 없이 야권통합과 정계개편 논의가 촉발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에서 갈라져 나간 국민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집권시 원활한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미 국민의당에 “연립정부 구성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도 야권통합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안철수 전 대표가 반대하지만 적어도 ‘보수 진영과 손잡는 것보다는 낫다’는 공감대가 양당 사이에 있는 건 분명하다.
제3지대 정계개편 논의 역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엔 과거 어느 때보다 변수가 많다. ‘빅텐트론’을 내세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미 한 차례 떴다 졌다. 개헌을 고리로 한 연대, 보수 진영 단일화, 국민의당이라는 제3당과의 협상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떠돈다. 최근엔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문제는 역시 시간이다. 과거 DJP연합 당시에는 한광옥·김용환 두 사람이 1년 이상 사전 정지작업을 벌였다. 워낙 비밀리에 협상이 이뤄진 탓에 ‘자물쇠 협상’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채 두 달도 남아있지 않다. 야권통합이든 정계개편이든 복잡다단한 변수를 어떻게 제거하고 합의를 이끌어낼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른바 ‘반문(반문재인) 연대’에 찬성하는 비주류 의원들이 김 전 대표와 함께 동반 탈당에 나서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탓이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제3지대 정계개편을 두고 책상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많아졌다”면서 “그런데 정말 이게 제한된 시간 안에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