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법관들의 사법개혁 취지 설문조사·학술행사를 축소토록 압박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임종헌(58·사법연수원 16기)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무에서 배제돼 사법연수원으로 인사조치됐다. 대법원의 압박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석연찮은 인사조치를 당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진상조사 등 대법원의 수습 조치와 별개로 일선 법관들은 판사회의를 열어 사안을 논의키로 했다.
이인복(61·연수원 11기)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는 13일 전국 법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대법원장에게 논란의 중심에 있는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건의했고, 이에 따라 사법연구 인사발령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임 차장에 대한 인사조치는 이날 급히 이뤄졌고, 임 차장은 당장 14일부터 사법연수원에서 수개월간 연구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대법원은 “임 차장이 법원행정처로는 출근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양승태(69·연수원 2기) 대법원장은 대법관 출신인 이 교수에게 이번 사태의 명확한 진상조사를 요청하면서 조사와 관련한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이 교수는 “진상조사는 객관성과 중립성, 공정성이 최대한 확보될 수 있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는 것부터 시작하겠다”며 17일까지 진상조사 참여 적임자를 추천해 달라고 법관들에게 부탁했다. 조사 대상, 조사방법 등 구체적인 절차는 진상조사단의 논의로 결정될 방침이다.
‘사법파동’으로까지 불리는 이번 사태는 법원 내 대표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지난달 9일부터 전국 법관 2900여명을 상대로 ‘사법독립과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며 시작됐다. 특정 정책과 배치되는 선고를 내린 뒤 인사상 불이익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묻는 민감한 내용도 설문에 포함돼 있었다.
이후 임 차장이 연구회 소속 A판사에게 “설문조사 결과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게 하고, 학술대회도 축소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반발한 A판사가 사직 의사를 밝히자 법원행정처로 발령이 났던 인사가 돌연 취소되고 원 소속인 수도권 법원으로 돌려보내졌다는 의혹도 이어 불거졌다.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13일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중복 가입한 전문분야 연구회를 탈퇴하라”는 취지의 글을 게시한 것도 압력 논란을 낳았다.
대법원은 A판사의 인사조치 의혹 등에 대해 그간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입장을 보였다. A판사가 지난달 인수인계 자리에 애초 나타나지 않았으며, 부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해명이었다.
하지만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의 기자회견과 언론보도 등이 이후에도 잇따랐다. 대법원은 진상조사가 시작된 이날은 의혹에 관한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일부 재경지법 소속 판사들은 이날 판사회의를 열었다. 법원행정처의 전산자료 동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법원 내부에서 이미 나오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법개혁 저지 의혹’ 임종헌 차장 업무 배제
입력 2017-03-13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