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결정문에 선고일시를 ‘11:21’이라고 분단위까지 적시했다. 대통령의 파면 시점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 이례적 조치다.
헌재 재판관들은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다양한 변수와 법리를 고려했다. 국가비상상황 발생 시 책임소재와 대선일자 시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민까지 담겼다.
13일 헌재 관계자에 따르면 헌재는 탄핵심판을 심리하면서 결정의 효력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를 두고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일반 법률에 위헌을 선고할 때 효력 발생 시점은 ‘선고당일 0시’로 소급 적용된다. 그날 위헌결정이 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억울한 재판 당사자가 생기면 안 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일반 법률과 달리 탄핵심판에서는 판례가 따로 없다. 헌재의 고민이 시작된 지점이다.
우선 0시 소급 판례를 따르면 탄핵심판 결정의 효력 발생 시점은 10일 0시다. 이때는 헌재가 최종적으로 주문을 낭독할 때까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10일 선고 직전에 대통령의 결정이 필요한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결정을 내린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만약 헌재가 탄핵을 기각했다면 박 전 대통령은 그날 0시부터 대통령 직무에 복귀한 셈이 된다. 발생한 비상사태에 대응할 권한·책임은 직무에 복귀한 대통령에게 있지만 실제 행위자는 권한대행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탄핵 청구를 인용할 때는 이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결과에 따라 효력 발생 시점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헌재 관계자는 “여러 변수를 고려해 결과와 상관없이 시간을 명시하기로 통일했다”고 말했다. 이정미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낭독한 뒤 자신의 오른쪽 벽에 걸린 시계를 살짝 쳐다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탄핵 청구가 인용될 경우 대통령 선거를 60일 이내에 치러야 하는 문제도 고려됐다. 대선 투표일 마지노선인 60일이 언제인지 특정해야 한다. 0시 소급 판례를 따르면 대선은 5월 8일 안에 치러져야 한다. 반면 효력 발생 시점을 11시21분으로 잡으면 이미 하루의 절반 가까이 지난 당일은 빼고, 그 이튿날을 첫째 날로 산입하게 된다. 이때는 5월 9일이 마지막 날이다. 효력발생 시점에 따라 하루 차이가 나는 셈이다.
법조 관계자는 “특히 60일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대선이 치러져야 하는 만큼 단 하루 차이라 해도 논란이 클 수 있었다”며 “헌재가 논란의 여지를 잘 차단했다”고 평가했다.
헌재는 결정문 송달과 같은 사소한 문제도 소홀히 넘기지 않았다. 헌재는 선고 즉시 전자문서 형태로 결정문을 박 전 대통령 측에 송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문을 제때 받지 못했다는 시비를 미리 막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탄핵심판에 준용한 형사소송법은 불구속 피고인이 요청할 때만 판결문을 송달토록 하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이 결정문 송달을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11시 21분’… 탄핵 효력 발생 시점 못 박은 까닭은?
입력 2017-03-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