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대표 가게를 찾아서] 전국 문인들의 ‘든든한 숲, 따뜻한 친정’

입력 2017-03-14 21:16 수정 2017-03-14 23:06
신아출판사 가족들이 지난 9일 사무실에서 최근 출간한 잡지와 단행본 등을 들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직원들 뒤로 신아출판사가 지난 47년간 펴내온 책들이 많은 책장에 빼곡히 놓여 있다. 신아는 그동안 4000여권의 단행본을 출간하고 10종의 정기간행물을 발행하는 등 호남지역 대표 출판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지역 문인들이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공간 역할을 해 왔다.
신아출판사 직원들이 인쇄기 앞에서 작업 중인 종이의 인쇄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2015년 3월 개교한 신아문예대학에서 수강생들이 문인의 강의를 듣고 있다(위 사진부터).
신아출판사의 정기간행물들
2012년 이사한 신아출판사 사옥의 옆문. 그동안 써온 각종 간판들이 달려 신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30여 년 전 대학생이었을 때 글을 쓰는 선배들을 따라 어느 작은 출판사를 방문하곤 했었다. 전북 전주시 주택가에 있는 작은 공간에는 낯빛과 맘씨 좋은 40대 부부와 직원 몇 명이 원고를 교정보거나, 대지작업을 하거나 혹은 인쇄 일을 하고 있었다. 이후 강산이 세 번 변한 뒤인 지난 8∼9일 찾아간 출판사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꽤 큰 공간이 되어 있었다. 책의 향은 훨씬 짙어졌고 인쇄기는 더욱 힘차게 돌았다. 사무실 곳곳엔 지난 47년간 펴내온 책 수천 권이 예쁜 담장을 만들고 있었다.

신아출판사. 전주 태평동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지난 반세기 가까이 전국의 문인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자, 든든하고 따뜻한 숲이었다.

신아의 시작은 1970년 ‘신아문예사’란 이름이었다. 서정환(76) 대표 부부가 처음 문을 열 당시는 인쇄소 수준이었다. 1984년 지금의 이름으로 사명을 바꾼 뒤 본격적으로 기획출판을 시작했다.

신아가 그동안 세상에 선보인 단행본은 모두 4000여 종에 달한다. 인문학 대중화를 위한 집념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메마른 지역 출판 시장의 벽에 넘어지기를 수없이 되풀이 했다. 시골 출판사란 편견도 고전의 이유가 됐다.

그래도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정신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작가들과의 교류를 넓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작가들에게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마당을 제공했다. 1985년 무크지 ‘신아문예’를 시작으로 1990년 월간 ‘소년문학’을 창간했다. 현재 정기간행물은 월간 ‘수필과 비평’ ‘좋은 수필’ ‘see’, 격월간 ‘여행작가’, 계간 ‘계간문예’ ‘문예연구’ ‘인간과 문학’ ‘표현’ 등 모두 10종이나 된다.

다른 지역 출판사에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문인들은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단순한 출판사가 아니라 지역 문인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친정 같은 공간이었다.

작가들을 응원하기 위한 상(賞)도 연달아 제정했다. 1992년 ‘수필과비평문학상’을 비롯 ‘신곡문학상’ ‘백제문학상’ ‘황의순문학상’ 등을 만들었다. 더불어 도서벽지 학교와 군부대·교도소 등에 책을 기증하고, 지갑이 얇은 작가들에게는 무료로 책을 만들어 줬다.

자연스레 신아는 문인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사랑방이자, 카페가 되었다. 그 사이 회사 규모도 서울의 웬만한 출판사와 겨룰 만한 몸집이 되었다.

이제는 서울이나 부산, 제주 등지에서도 찾아온다. 민용태, 김우종, 황필호 교수 등 익히 이름이 알려진 필자들도 이곳에서 책을 냈다.

출판과 인쇄, 유통을 병행해 한 해 매출도 수십억 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인력이 많고 문학계에 투자를 많이 한 탓에 큰 돈이 모이지 않았다.

그래도 전북지역 작가들을 발굴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이익상 전집’(5권)과 ‘유엽문학전집’ 등을 펴냈고 ‘전북국악사’ ‘전북희곡론’ 등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책도 계속 출간했다.

“대중과는 거리가 먼 작업들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죠. 보람을 느낍니다.”

1989년 입사한 이종호(58) 상무는 “책 판매는 다소 어려워 출혈이 있다. 하지만 가치 있는 책을 많이 내려고 노력하자는 게 사장님의 고집스런 철학”이라고 말했다.

2015년 신아는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신아문예대학’ 개교다.

시와 수필, 소설, 아동문학, 시낭송, 자서전쓰기반 등에 100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개교식에서 서정환 대표는 “지역 문화의 토양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문화의 싹이 돋아날 수 있는 방안은 문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의 복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학 수필창작반에 다니는 한성덕씨는 지난해 12월 31일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서정환) 사장님은 문학적 토양을 일궈내고 계십니다. 땅을 갈아엎고 거름을 주어 옥토를 만들듯이 말입니다. 충분한 자양분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하지요. 찬사와 함께 박수를 보냅니다.”

신아는 3년 뒤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열정은 여전하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다. 책을 읽는 이들은 줄어드는 기미를 보이고 있고 최근엔 송인서적의 부도로 어려움이 배가됐다. 그러나 신아 가족은 오늘도 ‘책’에 파묻혀 묵묵히 일하고 있다.

봄눈이 예쁘게 내린 지난 9일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사무실 한쪽에 적힌 글귀가 눈에 띄었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 지식의 창, 책을 사랑하는 사람 곁에 신아가 있다.” 서정환(76·사진) 신아출판사 대표는 전북의 ‘문예부흥사’다. 15∼16세기 서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다를 바 없다. 규모는 퍽 다르지만 한결같은 신념으로 지역 문학을 발전시키는 큰 후원자가 되어 왔다.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건네준 책을 밤새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내가 쓴 글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때는 가슴이 뛰었지요.”

순창에서 태어난 서 대표는 신아일보에서 기자 등으로 일하다 30세 때 같은 이름을 달고 ‘신아문예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이 문학발전 투자와 문인들 지원을 계속해 왔다.

10가지나 되는 잡지를 정기적으로 펴낸 것은 문예잡지 부흥만이 인문학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작가들의 작품을 발표할 곳이 많지 않다는 게 늘 안타까웠어요. 또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알찬 책을 내기 위해선 넓은 발표의 장을 먼저 마련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2년 전 ‘문예대학’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학을 중심으로 인접 학문과 문화콘텐츠를 구축하고 문화 예술인을 적극 발굴하고자 하는 뜻이었다. 이 같은 의지와 족적 덕분에 그는 전북애향대상 본상과 장수기업인상을 받았다. 또 수필가로서 전북문학상과 국제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서 대표가 못내 안타까워하는 것은 인생의 반려자인 부인이 13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이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큰 슬픔 속에서 한 2년을 어찌 생활했는지 모르고 보냈어요.” 그는 2006년 부인의 이름을 딴 ‘황의순문학상’을 제정, 추모하는 한편 작가 발굴도 계속하고 있다.

서 대표는 팔순을 바라보고 있지만 미소가 멋진 문학 소년이다. 그는 아직도 꿈이 많다며 ‘완판본(完板本)’ 얘기를 여러 번 했다. “완판본은 조선시대 전주지역에서 발간한 책과 그 판본을 말합니다. 전주가 완판본의 명예를 되찾고 출판문화의 중심이 되도록 여력을 다하겠습니다.”

서 대표는 “아무리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라고 하지만 책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좋은 책 출간과 더불어 머잖아 출판박물관을 꼭 열겠다”고 말했다.

전주=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