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일본을 우군 삼아 경제 다변화에 나섰다. 장기화된 유가 하락으로 석유경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에는 위기감을 느껴서다. 일본도 자국 기업들의 사우디 진출 확대에 기대가 잔뜩 부풀어 올랐다. 고령화로 속을 앓아온 상황에서 인구 절반이 25세 미만인 사우디의 시장은 매력적이다. 양국은 서로를 발판으로 새로운 경제 도약을 노리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협력안인 ‘일·사우디 비전 2030’을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합의안은 사우디 내 경제특구를 구축하는 내용이 골자다. 일본의 도움을 받아 특구에 공장과 연구소를 유치하고 제조업, 의료, 금융, 투자 등의 분야에서 발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살만은 이번 협력안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우디 왕으로는 46년 만에 일본을 방문했다.
사우디는 특구를 경제의 새 엔진으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혜택을 준비했다. 외국인 투자 규제 완화와 세제우대, 통관절차 간소화, 인프라 정비, 노동환경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산업 특구에서는 공장 신설 절차를 단순화하고, 부품 관세를 없애거나 전력망과 업무 환경을 정비하는 작업 등도 검토하고 있다. 특구에 일본과 사우디의 요구를 조율할 민간인 전문가 각 3명을 상주하게 할 방침이다.
사우디와 일본 민간 기업들과의 협력방안은 다음 날(14일) 투자포럼에서 구체화된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연내 상장하는 사우디의 세계 최대 석유회사 아람코와 업무협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도요타자동차는 공장 신설을 논의하고, JX그룹과 일본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는 석유와 가스 관련 공동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일본 3대 은행인 도쿄미쓰비시UFJ, 미쓰이쓰미토모, 미즈호 은행은 사우디 투자 촉진에 힘을 보태고 외무성은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경제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기존 노선을 탈피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경제는 석유, 외교는 미국에 의존해 오던 오랜 전략이 급변한 세계질서 속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살만은 일본 방문이 끝난 뒤 15일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날 예정이다. 새로운 외교적 돌파구를 중국에서 마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사우디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녹록지 않다. 2년 전 미국 버락 오바마 정권이 사우디의 최대 라이벌인 이란과 화해하면서 사우디가 중동에서의 외교적 수혜를 독점하기 어려워졌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정책은 현재로선 불확실성이 크다. 때문에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게 이번 방중의 최대 목표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란과 전통적 우방 관계인 중국과 유대를 강화해 이란을 일정부분 견제하는 효과도 거둘 전망이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석유경제 탈피’ 사우디, 日기업에 특구 개방
입력 2017-03-13 18:09 수정 2017-03-13 2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