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9명 전원이 13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데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황 권한대행은 이르면 14일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비서실장과 수석들은 오전 회의를 열어 사표 일괄 제출을 결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사저로 들어간 상황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던 참모진이 자리를 지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허원제 정무, 조대환 민정, 김규현 외교안보, 배성례 홍보, 강석훈 경제, 현대원 미래전략, 김용승 교육문화, 김현숙 고용복지, 정진철 인사수석이 사표를 냈다. 박근혜정부 청와대 수석은 모두 10명이지만 ‘왕실장’ 역할을 했던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자리가 비어 있어 현재는 9명이다. 한 비서실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임명됐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 비서진은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이후 거취를 고민해 왔다. 대통령이 유고 중인 상태에서 중심을 잡아줄 비서실장과 수석마저 전부 사퇴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박 전 대통령이 전날 청와대를 떠난 뒤 일괄 사퇴로 가닥을 잡았다.
황 권한대행이 사표를 모두 수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데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등 풀어야 할 난제가 많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진은 지난해 11월 박 전 대통령 직무정지 이후 공식적으로는 황 권한대행을 보좌해 왔다.
이 때문에 황 권한대행이 외교·안보·정책 라인은 그대로 두고 정무·홍보 기능을 축소하는 선에서 사표를 선별 수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 전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확산되자 수석 전원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한 뒤 이 중 일부만 교체한 적이 있다. 황 권한대행이 대선 전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사표를 전부 반려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靑 실장·수석 9명 일괄 사표… 黃 대행, 선별적 수리 가능성
입력 2017-03-13 18:04 수정 2017-03-13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