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불펜코치를 그만두겠다고 사표를 내놓은 상태에서 철석같이 믿었던 한국 모구단의 코치 자리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후임 코치는 이미 선임됐다. 하루아침에 갈 곳이 없어졌다.
2003년 12월 겨울은 혹독했다. 집도 조만간 비워줘야 하고 설상가상 의료보험도 끊겼다. 타던 차도 조만간 넘겨줘야할 판이었다. 집 앞 작은 한인교회가 있었는데 새벽마다 아내와 눈물로 부르짖었다.
“하나님, 우짭니까. 미국 구단에는 사표를 냈고 한국 구단에는 자리가 없어졌습니더. 하나님.” 간절히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었다. 막막했다. 이러다가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속이 타들어갔다.
15일째 새벽제단을 쌓은 어느 날이었다. “하나님, 제발 도와 주이소. 하나님….” 가슴 저 밑에서 평안함이 밀려왔다. ‘출애굽기 14장 10∼14절.’ 미국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이너리그 싱글A팀 3루 작전코치로 1998년 미국에 처음 도착해 인종차별과 문화적 차이로 고통스러워할 때 주셨던 말씀이었다. 앞은 홍해, 뒤는 바로의 군대로 꼼짝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 민족 앞에 하나님께선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5년 만에 주님은 같은 말씀으로 나를 위로해 주셨다. “아, 주님.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됐다. 그때부터 불안감이 싹 가시고 평안함으로 충만했다. “따르릉.” 오후가 됐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만수야, 좋은 소식이 있다.” 나를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끈 에이전트였다. “뭔데.” “니 불펜코치로 다시 컴백하게 됐데이.” “머라꼬.” 사표를 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내 사표를 반려한 것이다. 훗날 알고 보니 한국 프로야구 복귀 길이 막혔다는 이야기가 캔 윌리엄스 단장의 귀에 들어갔다고 한다.
“오 저런, 리가 한국에 못 들어가게 됐다고. 그 친구 실력 있는 코치인데, 팀으로 다시 부릅시다.” 할렐루야! 1개월 만에 나는 다시 불펜코치로 돌아왔다. 눈물이 났다. 후임자까지 채용한 상태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오, 주님 찬양합니더!” 아내와 나는 얼싸안고 감격의 기도를 드렸다.
감사함으로 2004년 메이저리그 경기에 임했다. 나를 신뢰해준 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감독과 6명의 코치, 25명의 선수들이 일치단결한 결과는 2005년 나타났다.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월드시리즈 결승전에 진출했다.
미국 이베이 사이트에서 결승전 티켓이 800만원에 팔렸다. 티켓을 산 80대 할머니가 TV에 나왔다.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비싼 티켓을 사게 됐습니까.” “나는 아버지 때부터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응원했습니다. 이번에 승리하면 8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는 겁니다. 내 생애에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요. 티켓이 1000만원이었어도 구입했을 겁니다.”
상대팀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였다. 2005년 10월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와 텍사스 주 휴스턴을 오가며 경기가 열렸다. 우리 팀은 1차전부터 3차전까지 잇달아 승리하며 우승의 고지에 다가서 있었다. 10월 26일. 지금도 휴스턴 미닛메이드 파크에서 열린 마지막 4차전 경기를 잊을 수 없다. 9회말 투아웃 1대 0의 상황이었다. 2루까지 진출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총력을 다해 역전을 노리고 있었다. “땅!” 땅볼이었다. 투수의 키를 넘긴 공을 신인 유격수 후안 유리베가 낚아채 1루로 던졌다. 1루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잡아냈다. “아웃!” “와아∼”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이만수 <12> 화이트삭스, 마침내 월드시리즈 결승전에
입력 2017-03-14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