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측이 대학본부를 점거하고 있던 학생들을 사실상 강제 해산시켰다. 학교 측과 학생 측이 5개월여 동안 해결을 못하고 맞서다 결국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태가 일단락됐다. 강제 해산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 새벽 기습적으로 진행됐다. 한 서울대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광장 민주주의는 진화하고 있는데 대학은 제자리걸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직원 동원해 농성 해산
서울대 학생의 대학본부(행정관) 점거 농성 153일째인 11일, 교직원 400여명이 오전 6시30분 갑자기 학사과 출입문을 통해 들이닥쳤다. 휴일인 토요일 새벽을 노린 학교 측은 1층 문을 뜯어내고 고소작업차를 동원했다. 오전 8시10분쯤 직원 15명이 학사과 출입문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서 학생과 직원이 대치 중인 사이 다른 직원들이 고소작업차를 타고 옥상을 통해서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점거 중이던 학생 30여명은 밖으로 끌려나왔다. 전체 5층 중 학생 12명이 남아 있던 4층을 제외한 전 층에 직원이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 2명이 탈진했고 1명은 무릎 타박상을 입었다. 학생들은 다시 소화기를 뿌리며 건물 재진입을 시도했다. 이에 대응해 직원이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뿌리는 일도 있었다.
대학본부는 지난 8일 본관 전체 5층 가운데 4층을 점거농성 공간으로 내주고 나머지 층은 직원들이 사용하겠다는 공문을 총학생회에 보냈다. 한규섭 서울대 협력부처장은 “중소기업청에서 ‘크리에이티브 팩토리’라는 학생들 창업 공간을 만드는 사업을 받아서 해야 하는데 점거농성으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총학생회는 대학본부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학교 측이 본부에 진입한 것이다. 학교 측은 “8일 이미 통보했으므로 강제 해산이 아니다”고 했고, 학생회는 “무력적인 침탈”이라고 주장했다.
대화 실종된 서울대
시흥캠퍼스 논의는 서울대가 2007년 글로벌리더십 캠퍼스를 만들겠다고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오랜 준비 끝에 학교는 지난해 8월 시흥시 등과 캠퍼스 조성을 위한 실시 협약을 체결했다.
총학생회는 즉시 반발하며 지난해 10월 10일부터 본관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학교가 학생과 상의 없이 기습적으로 시흥시와 협약을 체결했다는 게 이유였다. 총학생회는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본부의 보도자료 배포 30분 전까지 기획처를 비롯한 그 어떤 부서도 내용을 알지 못한 밀실 협약”이라고 밝혔다.
대학의 공공성이 훼손되는 부동산 개발 중심의 캠퍼스 계획도 비판의 이유였다. 임수빈 서울대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은 “시흥캠퍼스는 교육적 목적이 빠져 있고 재정 운영 계획이 불투명하다”면서 “학교가 현재 구상하고 있는 사업이 키즈카페 실버타운 호텔 등인데 모두 대학교육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윤민정 사회대 학생회장도 “주변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건설사는 서울대가 들어온다고 홍보하면서 분양하고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서울대와 건설회사가 나눠 갖는다”고 비판했다.
“강제 해산은 70년대 방식”
갑작스러운 강제 해산에 서울대 교수들도 당황했다. 유용태 역사교육과 교수는 “학교 측이 학생을 해산하는 방식이나 행태를 보면 1970년대 방식과 똑같아 답답하다”며 “참담하다”고 했다.
서울대는 국정농단 사건에 졸업생들이 다수 연루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었는데 내우(內憂)까지 겹친 모습이다. 국정농단에 연루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서울대 출신이다. 성낙인 총장은 지난 2일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입학식에서 “최근 서울대인들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사회에) 더 많이 회자된다”고 말했다.
박배균 지리교육과 교수는 “10일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국민들이 다 기뻐하고 외신들도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했는데, 바로 그 다음 날 새벽 서울대에서는 온갖 말도 안 되는 폭력과 비상식이 난무하는 장면이 연출됐다”며 “서울대를 최고의 지성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최고의 적폐”라고 비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울대 시흥캠퍼스 사태에서 학생과 대학 간 논의가 실패하는 장면은 누구의 탓을 떠나 한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한국 사회가 촛불시위와 헌재의 판결을 통해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오히려 대학에서 물리력을 동원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폭력 방식 해결’ 서울대, 최고 ‘지성의 전당’ 맞나
입력 2017-03-1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