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희망 밝혔다”… 축제로 막 내린 촛불집회

입력 2017-03-12 18:21

“촛불이 해냈다. 우리가 승리했다.”

133일을 견딘 촛불은 결국 승리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다음날인 11일 스무 번째 촛불집회는 ‘촛불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는 주최 측 추산 70만8160명이 모였다. 서로를 위로하고 촛불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모르는 이들도 촛불을 함께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웃음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수많은 폭죽이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만세도 부르고 껴안고 춤도 췄다. 지난 4개월여간 이어진 매서운 한파도 물러갔다. 완연한 봄이었다.

기조발언에 나선 최종진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는 “마침내 촛불이 승리했다”며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촛불혁명 승리를 자축하자”고 기쁨을 표했다. 김광일 퇴진행동 집회기획팀장도 “불금보다 더 뜨거운 ‘탄금’(탄핵 금요일)을 보내셨느냐”며 “우리는 1년의 3분의 1을 촛불을 들고 끈기를 갖고 싸웠다”고 격려했다.

‘축 탄핵’ ‘축 파면’이라 적힌 화환이 세종문화회관 앞에 줄지어 있었다. 지하철 광화문역 입구에는 꽃길이 만들어졌다.

“주문을 선고한다. 주문.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

집회 중반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전날 탄핵심판 선고 영상이 나오자 환호성이 광장에 가득했다. 전날의 감격을 곱씹으며 눈가를 훔치는 시민도 있었다.

집회에 참가한 김성훈(46)씨는 “그간 사회문제가 있을 때마다 집회에 나왔지만 승리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고, 항상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갔다”며 “이번에 처음으로 작은 파열음을 낼 수 있었다. 이제 다음 세대도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비판하고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집회에 12번째 나왔다는 조일형(32)씨는 “초반에는 분노하고, 중반에는 점점 지쳐갔지만 결국 승리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그동안 우리 사회에 희망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이제 조그마한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총리관저, 종로 도심, 청와대 방면 등 세 갈래로 촛불 행진이 시작됐다. 총리 관저로 가는 행렬은 “황교안은 퇴진하라”고 외쳤고, 박 전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청와대 방면으로 향한 행렬은 청와대 앞 100m 부근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나가라” “방 빼라”고 소리쳤다. 행진 중 시민들은 “진짜 봄이 왔다” “광장이 승리했다”며 탄성을 질렀다.

세월호 문제를 걱정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세월호 희생자 사진이 무대 영상에 나타나자 자리에 앉아 있던 50대 여성은 쓸쓸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춘천에서 온 황창호(61)씨는 “세월호가 헌재의 탄핵 사유에 포함되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며 “반드시 세월호의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친구와 집회를 찾은 주모(52)씨는 “여기 온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완성한 주역”이라며 “앞으로도 대통령을 잘 뽑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경기도에서 온 배모(47)씨도 “국민의 힘으로 권력에 맞서 이겼지만, 여기서 끝날 게 아니다”라며 “올바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나라를 잘 이끌어나가도록 해야 비로소 승리가 완성된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마지막 촛불까지 촛불을 든 시민의 누적 인원은 1658만1000여명. 주말마다 열리던 촛불집회는 끝을 맺었지만 오는 25일과 세월호 참사 3주기(4월 16일)를 앞둔 다음 달 15일에도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매년 3월 10일 촛불집회를 열겠다고도 했다.

글=최예슬 이현우 이재현 이택현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