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면서 여성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진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을 믿었으며,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 …성별 인종 종교 재산과 상관없이, 실력을 가진 자들이 힘을 합치면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미국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지난해 12월 백악관에서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를 관람한 뒤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작품에 별 5개 만점을 줬다. 1960년대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차별과 불평등에 온몸으로 맞선 세 흑인여성이 선사한 감동은 5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유효한 것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히든 피겨스’는 제목 그대로 역사 속 숨겨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춘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당시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에서 활약한 세 명의 천재 여성이 주인공이다. 미국 최초 유인 위성 발사에 큰 공을 세운 수학자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과 나사 최초의 흑인여성 책임자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엔지니어 메리 잭슨(자넬 모네)이다.
이들의 직장생활이 쉬웠을 리 없다. 우주선 프로젝트에 합류한 캐서린이 처음 백인 전용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청소부로 오인을 받는다. 도로시는 10년간 지각·휴가 한번 없이 전산원으로 일했으나 승진하지 못하고, 메리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백인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엔지니어직에서 배제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상 곳곳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에 부딪힌다. 일하는 건물, 직책, 화장실, 심지어 커피포트까지 백인(White)과 유색인종(Colored)의 것이 분리돼 있었다. 캐서린은 용무가 급할 때마다 일거리를 잔뜩 싸안고 800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흑인 전용 화장실로 달려간다. 이런 불합리를 지켜보는 관객의 속은 무언가로 꽉 막힌 듯 갑갑해진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좌절감 따위를 드러내지 않는다. 시종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세 여성의 당찬 걸음을 따라간다. 깨어있는 상사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은 캐서린의 능력을 알아보고 길을 터준다. 도로시는 남보다 앞서 프로그래밍 기술을 연마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메리는 엔지니어가 되는 데 필수적인 백인학교의 수업을 듣기 위해 법정투쟁을 불사한다.
“누구의 도약이든, 우리 모두의 도약”이라는 도로시의 대사. 그 강력한 유대감은 역경을 이기는 발판이 됐다. 그들이 쏘아올린 건 평등이라는 이름의 희망이었다. 뮤지션 퍼렐 윌리엄스가 참여한 음악은 그들의 용감한 여정에 흥을 더했다. 각 캐릭터를 연기한 세 배우의 앙상블 또한 훌륭했다.
이 영화 시놉시스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여전히 남아있는 이 사회의 ‘유리천장’을 깨부술 한 방은 이제 우리의 몫일 테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히든 피겨스’ 차별의 벽 넘은, 그들은 영웅이었다 [리뷰]
입력 2017-03-14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