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밝힌 ‘대한민국 대통령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

입력 2017-03-13 05:01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문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무수행 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격 조건을 제시했다. ‘공익실현 의무’ ‘투명한 공무 수행’ ‘헌법 수호 의지’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위임받은 막강한 권한의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반 필요조건이자 미래의 대통령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이기도 하다.

국민 전체를 위한 국정 운영

헌재가 10일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한 핵심 사유는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을 방조하고, 그의 사익 추구를 도우려 권한을 남용했다는 점이다. 헌재는 이를 공무원의 의무와 책임을 규정한 헌법 제7조 1항 위반이라고 봤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여야 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나라’를 위해 봉사했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공무원이므로 누구보다도 국민 전체를 위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대통령은 특정 정당이나 계급 종교 지역 및 자신과 친분 있는 세력의 특수한 이익 등으로부터 독립해 직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안창호 재판관은 결정문 보충의견에서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사익 추구에 이용되면 국가 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선과 공통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명한 공무 수행

헌재는 대통령이라 해도 보안이 요구되는 직무를 제외한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무런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이른바 비선 조직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비밀리에 국정에 개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문화융성이란 국정과제 수행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하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해 헌재는 “공권력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과 요건을 법률로 정하고 공개적으로 재단을 설립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면서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은폐에 급급했던 처사도 파면의 주요 사유였다.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이 국회나 언론의 견제·감시를 무력화하는 건 권력분립 원리에 위배될 뿐 아니라 부패 범죄의 토양이 된다는 헌재의 경고가 담겼다.

헌법 수호 의지

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해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한다. 헌법 제69조에 명시돼 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에게 파면을 명하면서 헌법 수호 의지가 빈약하다고 수차례 지적했다. 국정농단 파문이 커지는데도 진정성 없는 사과만 반복하고,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를 받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점 등에 비춰 헌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가 돼야 한다는 게 헌재의 주문이다. 국정농단 의혹의 중심에 섰던 박 전 대통령을 향해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다”고 질타한 이유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