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10일 오전 11시21분.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지켜보던 중국의 한인들은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한마디에 탄성을 질렀습니다. 어떤 이는 “이제 와서야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부끄럽지 않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이제 반(反)사드로 가자”고 외쳤습니다. 박근혜 탄핵을 지지했던 한국 국민이 80%라고 하지만 중국의 교민들은 더 탄핵을 원했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느꼈던 부끄러움에 더해 사드(THAAD)로 인해 불안해진 중국 생활 때문입니다. 롯데가 사드 부지를 제공키로 한 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은 노골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까지 나서 사드 반대를 공표했지만 막아내지 못해 체면이 깎인 중국은 작심한 듯했습니다.
한인사회는 그야말로 흉흉합니다. 베이징의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걱정 어린 경험담이 속속 올라옵니다. 한 교민은 늘 이용하던 불법 택시 헤이처(黑車)를 탔다 평소대로 15위안(약 2500원)을 건넸더니 기사가 “중국인은 15위안, 한국인은 20위안(약 3350원)”이라고 소리쳐 그냥 웃으며 줬다고 합니다. 애초 한국인이면 태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광분하는 데 겁이 났다는 겁니다.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데 한 중국인이 “당신들은 애국심도 없느냐. 내가 음식값을 줄 테니 이 사람들 내쫓아라”라고 소리쳐 공포에 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한국인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유언비어까지 퍼지면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중국 사람하고는 말도 섞지 말라고 항상 다짐을 받습니다. 한국에서 걸려오는 안부 전화에 괜찮다고는 하지만 걱정은 떨쳐내기 힘듭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8년째 베이징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한인은 “이제 중국을 떠날 때가 온 것 같다”고 한숨을 쉽니다. 중국 은행에서 대출받은 기업들은 대출 연장을 안 해줄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천안문 열병식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한·중 관계가 더없이 좋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인에게 ‘하오 펑유(好朋友·좋은 친구)’라며 뭐든 들어줄 것 같았던 중국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표변한 중국에 두려움과 분노가 커졌습니다. 사드 뒤에 미국이 있다며 롯데와 한국이 아니라 KFC와 미국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위로하는 이성적인 중국인들도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사실 교민들의 원망은 중국 정부 못지않게 한국 정부를 향합니다. 전격적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하면서 중국의 보복 경고가 나올 때만 해도 설마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처리된 후에는 다음 정부에서 중국을 설득하면서 잘 넘어갈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습니다. 그게 외교니까요.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사드 배치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성급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대통령 파면으로 중국도 보복 강도를 조절하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교민들은 “대통령 후보들이 직접 와서 교민을 위로해 달라”고, “중국 정부와 국민들을 설득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중국한국인회는 최근 한국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주중 한국대사관에 전달했습니다. 그중 아프게 다가오는 문구가 있습니다. “생사존망의 기로에 서 있는 80만 재중 한국인도 한국 국적의 국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몽니로 대한민국 전체가 매우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과도 정부와 차기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기대합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특파원 코너-맹경환] 좌불안석, 중국 내 한인들
입력 2017-03-12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