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영화 ‘쇼콜라’] 오셀로를 꿈꿨던 흑인 광대

입력 2017-03-12 21:30
프랑스 서커스 무대의 스타였던 콤비 광대 쇼콜라(왼쪽)와 푸티트의 이야기를 그린 ‘쇼콜라’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벨 에포크’, 말 그대로 ‘아름다운 시대’라 불리는 이 시기의 유럽은 풍요와 화려한 볼거리에 도취된 곳이었다. 자동차 영화 등 과학기술의 발전이 낳은 발명품은 더 먼 곳, 더 낯선 곳의 풍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했고, 식민지에서 들여온 이색적인 물건들은 정복자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생명체, 희한한 볼거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쿠바에서 프랑스로 오게 된 흑인 라파엘 파디야도 마찬가지였다. 시골 서커스 극단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괴성이나 지르며 자존심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한때 유명한 광대였지만 퇴물 취급을 받게 된 조르주 푸티트는 그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신과 함께 광대 연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백인과 흑인이 콤비를 이룬 슬랩스틱 코미디는 점점 인기를 얻게 되고, 마침내 파리의 연예계를 평정한 스타가 된다.

로쉬디 젬 감독의 ‘쇼콜라’는 프랑스에 실존했던 콤비 광대 ‘쇼콜라와 푸티트’의 이야기를 각색했다. ‘쇼콜라’는 초콜릿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다. 당시 식민지에서 가져온 새로운 문물 중 하나인 초콜릿은 검은 피부를 지닌 사람들을 비하하는 단어로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라파엘 파디야 역시 본명이 아닌 ‘쇼콜라’라는 예명으로 살아야 했다.

쇼콜라와 푸티트의 코미디 연기는 전형적인 인종차별과 편견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장 콕토는 이들의 서커스를 보고 “푸티트는 미친 백작 부인 같았고, 쇼콜라는 계속 따귀를 맞고 있었다”고 묘사한 바 있다. 왜소한 백인이 덩치 큰 흑인에게 발길질을 하는 모습은 당시의 관객들에게 폭소를 안긴다. 영화는 이들의 연기와 관객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재연하면서 21세기의 관객인 우리로 하여금 ‘웃는다는 것’의 모호함을 체험케 하려는 듯하다.

인기의 정점에서 쇼콜라는 자신의 존재와 연기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무대에서 정해진 대본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다. 맞고 차이기만 하던 그가 갑자기 푸티트에게 그 행위를 돌려준 것. 관객은 순간 동요하지만, 연기의 일부라 생각해 마침내 웃음을 터트린다. 당황한 푸티트에게 쇼콜라는 조용히 속삭인다. “봤지? 반대로 해도 통하잖아.”

흑인 광대에게 주어진 역할을 벗어나기로 결심한 그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 도전한다. 주인공 오셀로는 흑인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늘 백인 배우가 분장해 맡아온 인물. 쇼콜라는 프랑스에서 최초로 오셀로를 연기한 흑인 배우가 되었고, 배역도 훌륭히 소화한다. 얻어맞는 바보 광대가 아닌 비극의 주인공으로서의 흑인을 관객은 인정할 수 있을까?

쇼콜라의 전기를 각색한 이 영화는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와 서커스를 재현한 장면들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인다. ‘언터처블: 1%의 우정’에서 장애를 입은 백만장자의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감동적인 우정을 나누게 되는 가난한 흑인 청년 역을 맡았던 오마르 시가 쇼콜라를 연기한다. 그의 콤비 광대 푸티트는 찰리 채플린의 손자로 4세 때부터 서커스 공연을 해온 제임스 티에레가 맡았다. 웃음과 감동이 다시 필요한 이 계절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영화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