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도 침묵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입장 발표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서울 삼성동 사저 상황 때문에 이동할 수 없어 오늘은 관저에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발표하거나 메시지를 내놓을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 측의 이런 입장은 헌재의 파면 결정이 나온 지 4시간이 지나서야 공지됐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헌재 선고 직후 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이어 관저로 찾아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퇴거 절차와 시기, 대국민 메시지 발표 여부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솔직한 심경이나 의중을 드러내지 않아 참모들도 더 이상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대화는 1시간여 만에 끝났다고 한다. 한 참모는 “대통령이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로 찾아온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의 면담 요청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헌재 파면 결정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건 이런 분위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청와대와 가까운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선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대통령은 방 빼라”는 구호를 외쳤다. 야당도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에 손대지 말고 속히 청와대를 떠나라”고 촉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저 정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관저에서 나갈 것”이라며 “다른 뜻은 없다”고 강조했다. 주말 동안 준비를 마치고 13일 사저로 가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면 언제까지 청와대를 비워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전례도 없었다. 서울 삼성동 사저는 박 전 대통령 취임 이후 4년 넘게 비어 있었지만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게끔 준비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경호실과 총무비서관실 직원들은 이날 오후 삼성동 사저를 찾아 통신장비 등 일부 짐을 옮겼고, 경호와 난방 등을 점검했다.
‘자연인 박근혜’의 사저 생활은 이영선 청와대 경호관이 도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호관은 사저 경호팀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초반 퇴출된 ‘문고리 3인방’ 중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박 대통령 가까이에서 여러 가지 시중을 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은 현재 구속 수감된 상태다. 정 전 비서관은 헌재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대통령을 끝까지 보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에는 종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마지막까지 기각 결정에 기대를 걸었던 참모들은 ‘8대 0’ 전원일치로 파면 결정이 내려지자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기각 쪽에 무게를 두고 박 대통령 직무 복귀 시나리오도 마련한 상태여서 충격은 더 컸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 조사를 거부하고, 헌재 최종변론마저 불출석한 게 패착이었다는 뒤늦은 한탄도 새어나왔다. 일부 수석들의 사퇴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됐다. 한 참모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앞으로 두 달 남았다.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사진=서영희 기자 jhk@kmib.co.kr
참모들 보고받은 박근혜 前 대통령 “드릴 말씀이 없다” 한마디뿐
입력 2017-03-11 00:00 수정 2017-03-11 01:06